익숙한 풍경이 노래 부를 때[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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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종코 ‘심야버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봄이 되면 각 지역 문화재단과 음악창작소에서 지원사업을 펼친다. 음반 제작을 돕기도 하고 공연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 자리에 가끔씩 심사위원으로 갈 때가 있다. 대부분은 제출한 음원으로 1차 심사를 한 뒤, 1차 심사를 통과한 음악가를 대상으로 실연 심사를 하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집중해 음악을 듣고 그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필요한 질문이란 건 달리 말하면 내가 궁금한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대구에 갔을 때 ‘종코’란 이름의 음악가를 만났다. 종코는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포크 아티스트다. 그의 음악은 예전에 들었지만, 그가 포항에서 살며 음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알았다.

짧은 인터뷰 시간에 종코는 포항과 바다에 대해 이야기했고, 난 음악에 포항의 풍경과 정서가 담겨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답을 듣는 순간 그의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음악도 좋았기에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고,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그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들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주곡 ‘오도리 314-1번지’는 포항 바다 근처의 장소이고, “멀리 떠나는 건 마음먹기 어렵지만 바람이 부는 시원한 바다 보러 가는 건 어때”란 가사는 바다 근처에 사는 이가 쓸 수 있는 작은 사치 같은 문장이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심야버스’에서 그가 살짝 눈 감았다 보는 “조금씩 익숙한 풍경”은 포항의 ‘곳곳’일 것이다.

음악 안에, 노래 속에, 더 많은 지역이 담겨 있으면 좋겠다. 서울공화국이 돼버린 현실에서 자기가 자란 곳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노래하는 건 그래서 더 귀하다. 미국 음악가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뉴욕을 힙합 성지라 부르지만, 각 지역의 특성을 담은 힙합이 곳곳에서 생겨나 뉴욕과 경쟁한다. 록 밴드 본 조비는 아예 앨범 제목을 자신들의 고향인 ‘뉴저지’로 했다. 지역 스포츠 팀의 모자나 유니폼을 입는 건 오랜 문화적 특성이다. 대전의 힙합 그룹인 45RPM이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음악 방송에 선 게 더 반가웠던 이유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래퍼 제이통은 “(서울) 촌놈들아 까불지 마라. 바다가 한강이랑 같은 줄 아나”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서로 자극하고 경쟁하며, 때론 협력할 때 문화는 발전한다. 하지만 지역 간 음악을 통한 경쟁과 협력은 쉽지 않다. 각 지역엔 음악가가 없고, 음악을 향유할 사람이 없고, 노래할 공간이 없다. 음악가와 관객, 공간을 합쳐 ‘신(scene)’이라 표현하지만 몇 도시를 제외하곤 신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다. 현실적으론 너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 더 많은 종코와 제이통이 자신의 지역을 지키며 노래해주길 바란다. 서울 사람들이 ‘혜화동’과 ‘광화문 연가’의 추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더 많은 포항 노래가 생기길 바란다. 내가 자란 대전 월평동 노래도 생기면 더 좋겠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종코#풍경#노래#심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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