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더기로 CEO 불러다 망신 주면 산업재해 줄어드나

동아일보 입력 2021-02-23 00:00수정 2021-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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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어제 건설·제조·택배 분야의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CEO) 9명을 불러 산업재해 청문회를 열었다. 서너 명의 CEO에게만 질의가 집중돼 나머지는 들러리나 다름없었고 몇몇 의원은 군기 잡기식 구태를 재연했다.

‘허리 지병’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었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 대해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주로 보험 사기꾼들이 내는 진단서”라며 “허리 아픈 것도 불편한데 롤러 압착돼서 죽으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냐”고 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인성’을 거론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최 회장의 사진을 띄워놓고 ‘신사참배’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2018년 세계철강협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도쿄 인근 절을 방문했다는 최 회장은 어이없어했다.

민주당 임종성 의원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노트먼 조셉 네이든 대표를 단상에 세워놓고 “한국어 가능하냐. 한국 대표는 한국어도 해야지”라고 말했다. 외국인 CEO의 한국어 실력과 산업재해가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산재 사고가 연 9만 명대 수준으로 발생하고 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매년 800명 이상에 이르는 실정이다. 중대재해 문제에 국회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그런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의견 수렴과 숙의 절차 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해 놓고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연 ‘보여주기 청문회’를 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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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생산적인 논의를 할 생각이었다면 대기업 CEO만 불러 윽박지르고 호통을 치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기업의 산재 관련 책임자 및 노동계 인사, 산업안전전문가 등을 불러 이틀이고 사흘이고 집중 청문회를 여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사후적인 처벌 위주가 아니라 ‘사전’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쪽으로 산업안전 입법 방향을 원점에서 논의할 필요도 있다.
#산업재해#청문회#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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