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와 나훈아[이승재의 무비홀릭]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입력 2020-10-23 03:00수정 2020-10-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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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부’의 포스터. 인간은 어디까지나 신의 마리오네트에 불과한가. 동아일보DB
[1] 1972년 나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갱스터 영화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버렸어요. 이탈리아 출신 마피아 보스들은 놀랍게도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파스타를 요리하는가 하면,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손자 손녀를 챙기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마치 민간인(?)인 양 군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조폭 두목이 회칼을 ‘담그는’(‘찌른다’는 뜻의 업계 은어) 경우는 있을지라도, 집에서 열무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도통 힘들잖아요?

한술 더 떠서, 대부인 돈 코를레오네(말런 브랜도)는 딸의 결혼식에서 딸의 손을 맞잡고 왈츠에 맞춰 다정하게 춤을 추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겐 “어떤 대가도 필요 없다. 신의가 중요하다”는 있어 보이는 말을 던지며 민원을 해결해주고 존경을 한 몸에 받지요. 심지어 그는 마약이라는 고부가가치 미래사업(?)을 결단코 거부해요. 마약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킨다는 이유로요.

여기서 우린 질문을 던지게 되어요. 대부는 단지 조폭들의 죽고 죽이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이지요. 맞아요. 실제로 대부를 들여다보면 암흑의 세계를 넘어 인간과 삶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이 숨어있어요. 딸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해, 대부인 돈 코를레오네의 장례식을 거쳐, 대부 자리를 이어받은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의 딸을 위한 세례식 장면으로 끝을 맺지요. 결혼식→장례식→세례식. 결혼하고, 죽고, 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생(生)의 순환을 상징하고 있었던 거예요. 게다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성격대로 죽는다는 놀라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어요. 대부의 큰아들 소니는 성질머리가 급하고 더럽지요? 그래서 따발총 500발 맞고 죽어요. 반면 마이클이 시칠리아섬으로 피신한 뒤 우연히 만나 결혼한 여인 아폴로니아는 어떻지요? 이름 그대로 순결하고 순수한 그녀는 차량 폭탄 테러로 단박에 깨끗하게 생을 마감하지요. 맞아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메시지마저 숨어있었네요. 와우!

더 기막힌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대부 속 마피아 두목들 중 스스로 죽는 놈은 하나도 없어요. 죄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죠. 자연사하는 자는 오로지 한 명, 돈 코를레오네 자신이지요. 어느덧 할아버지가 된 그는 손자와 정원에서 귀신놀이를 하다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어요. 이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 영화는 웅변하지요. 제 아무리 자유의지로 산다고 뻐기는 인간이지만, 죽음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신(神)의 마리오네트(실을 매달아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하다고 말이지요(이 영화 포스터에 마리오네트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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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물론 지금 조폭 두목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려는 게 아니에요. 인간이 자기 의지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스스로 존재하기란 얼마나 더 어려운지를 말씀드리려는 거죠.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도 따져보면 스스로 존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요. 아이언맨은 자본의 노예잖아요? 스파이더맨은 가난의 노예이고요. ‘600만 불의 사나이’는 기계공학의 힘 없이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슈퍼맨은 ‘지구인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초인 콤플렉스의 노예이지요. 낮엔 억만장자였다가 밤이면 박쥐 코스프레를 하며 나쁜 놈들을 제멋대로 혼내주는 배트맨은 어릴 적 트라우마에 영혼을 저당 잡혀 있고요. 헐크는 제정신이 아닐 때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금치산자이므로 영웅이란 카테고리에 애당초 들지도 못하지요.

[3] 이런 의미에서 저는 나훈아야말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진짜 슈퍼스타란 생각이 들어요. 이분이 ‘신체훼손설’에 시달리던 12년 전 1월, 기자회견을 열면서 돌연 테이블 위로 올라가 바지 지퍼를 반쯤 내린 채 “지금부터 5분 동안 여러분에게 모두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외치던 순간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4분도 아니고 6분도 아니고 딱 5분 동안 보여주겠다니…. 영화보다 영화적이었던 이 모멘트 이후 게임은 끝이 났고 세상은 그의 것이 되었지요.

그는 다시 12년의 공백을 깨고 얼마 전 추석특집을 통해 TV에 ‘짠’ 하고 등장했어요. 코로나19로 지친 대한민국을 다시 밝히는 등불이라도 된 것처럼요. 무슨 ‘반지의 제왕’ 속 아라곤 같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한 나훈아는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는 문제적 발언을 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스스로의 힘을 믿으라고 당부했지요. 그러면서 ‘(소크라)테스 형’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세상이 왜 이래?”

저는 그 순간, 고대 그리스인 같은 외모를 한 이 72세 가수야말로 현대판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놈 저놈 눈치 안 보고, 터진 입으로 하고 싶은 말 막 던졌던 인간이 바로 소크라테스 아니었겠어요? 나훈아는 이런 기념비적인 무대에 심지어 노 개런티로 출연했으니 더욱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거죠. 아마도 ‘테스 형’ 다음 그의 노래는 ‘용이 형’이 아닐까 추측해요. ‘목민심서’를 쓴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면서 “용이 형! 요즘 관료들이 왜 이래?”를 외칠지도 모르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훈아는 명성에 비해 부동산 같은 재산이 의외로 많지 않았어요. 할 말은 하는 그의 배짱은 심지어 돈에도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스스로 존재해온 자연인 같은 인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톱 배우가 서울 강남 6층짜리 건물을 116억 원 대출 받아 160억 원에 샀다’는 뉴스가 인터넷을 도배하는 요즘, 새삼스럽게도 “세월에 끌려다니지 말고,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한다”면서 소크라테스처럼 있어 보이는 말을 하는 나훈아야말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닐까 말이에요.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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