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감축 해결될까… 방위비 협상 뒤 주한미군[광화문에서/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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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주독미군의 3분의 1을 감축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결정이 발표되는 과정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은 물론 당사국인 독일도 모른 채 언론 보도로 내용이 알려진 시작부터 그랬거니와 지난달 29일 공식 발표 과정에서 내놓은 실무부처와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은 완전히 달랐다.

브리핑 연단에 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주독미군 1만2000명의 감축을 발표하면서 “국가방위전략(NDS)에 따라 지난해부터 지속해온 검토 끝에 내린 전략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결정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억지력과 준비태세를 강화하고, 미 유럽사령부 운용의 유연성을 높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연성’이라는 단어는 11번이나 사용했다. 존 하이튼 미 합참차장과 토드 월터스 나토연합군 최고사령관도 군 전문용어를 동원하며 그를 거들었다.

이들의 장황한 설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오후 “독일이 돈을 안 내서 우리가 군대를 뺀다”고 밝히면서 몇 시간 만에 무색해졌다. 방위비와 주독미군 감축을 노골적으로 연계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솔직한’ 언급 덕분에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렸다. ‘전략적 재배치’ 논리가 허울 좋은 포장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국방부의 브리핑은 해외 국가들에 미군 감축(혹은 철수)의 논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감축의 ‘다음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에 던진 숙제도 적지 않다. 국방부는 이미 주한미군이 속한 인도태평양사령부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 검토 결과에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군 운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한 결정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

주한미군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육군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중국을 견제할 공군과 해군의 대다수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고, 남중국해에서 진행하는 해상 연합훈련에는 한국이 아닌 일본과 호주가 참가한다. 중국을 타깃으로 삼는 큰 틀에서 한반도에 있는 지상군의 역할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첨단 방어시스템의 개발, 한국으로의 전시작전권 전환 등도 미군이 발을 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워싱턴에서는 미군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할 한국의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공격적인 대중(對中)정책에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밝히며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리고 있는 일본과 대놓고 비교하기도 한다. 최근 만난 트럼프 행정부의 한 당국자가 “우리가 한국 없이는 중국을 상대하지 못할 것 같으냐”며 일본 내 미군 기지들의 이름을 나열했을 때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또 다른 당국자는 기자가 “앞으로 일본이 한국보다 중요한 안보 파트너가 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질문을 하려 하자 끝까지 듣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돼 있다”고 말을 끊기도 했다.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우려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의 협상을 타결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치열한 고민과 함께 대응 준비가 필요하다. ‘돈 문제’만으로 치부했다가는 떠나는 미군을 속절없이 바라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주독미군#방위비 협상#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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