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면역 강화 비법[이상곤의 실록한의학]〈93〉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20-05-25 03:00수정 2020-05-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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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감기의 옛말은 ‘고뿔’이다. 코에 불이 났다는 뜻. 이를 의미 그대로 한자로 바꾸면 ‘비염(鼻炎)’이다. 요즘은 코에 생긴 염증을 통칭 비염이라고 일컫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승정원일기에서는 뿔 각자를 써 ‘비각(鼻角)’이라 불렀다. 영조는 어의들에게 자신의 병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대표적 임금이다. 잔병치레도 많았고 엄살도 심했다. 영조가 감기에 대해 “고뿔 증세는 하루 만에 사라졌는데 기침은 여전하다. 감기는 원래 대단치 않다. 고뿔은 그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말한 기록으로 미뤄 조선시대의 고뿔은 약한 감기, 초기 감기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콧물, 코 막힘 정도의 가벼운 증상을 통칭한 듯하다.

“나는 사계절 모두 감기를 달고 다닌다. 삼동(三冬)이 점차 가까이 다가와 연이어 감기에 걸릴 것인데, 그렇다고 어떻게 제사에 연이어 빠질 수 있겠는가.” 영조는 면역력이 무척 약했다. 감기를 달고 살다시피 해 대신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대신들은 영조가 감기에 걸린 이유를 얇은 옷에서 찾았다. 찬바람에 노출돼 감기에 걸렸으니 두꺼운 옷을 입으라고 강력히 건의한다.

감기는 면역 기능이 약해졌을 때 생기는 질환이다. 조선시대 감기를 고뿔이라고 부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면역 기능은 질병(疫)을 막는(免) 기능인데 코는 인체의 최선봉에서 이물질과 병원체를 막아준다. 코털은 먼지나 이물질을 걸러내고 콧물은 바이러스나 세균을 흡착한다. 한의학은 코를 인체의 양기가 모이는 곳으로 본다. 코가 몸의 한기를 몰아내는 보일러 역할을 한다고 여긴다. 예부터 코 큰 것이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부처상의 코를 만지면 사내아이를 낫는다는 주술이 생긴 이유도 코를 양적인 힘의 원천으로 보기 때문이다.


영조 신하들의 지적처럼 감기의 원인은 차가운 기운, 한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더욱이 영조는 몸이 차가운 체질이었다. 영조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양기 보존에 무척 신경을 썼다. 따뜻한 복대를 차고 양기를 올려주는 약재가 든 탕재와 약차를 수시로 복용했다. 인삼과 녹용, 생강, 계피 등은 몸을 극도로 따뜻하게 하는 약초들이다. 이런 노력들 때문일까. 이후 영조의 고뿔에 대한 기록은 승정원일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코 건강은 양기를 보존하는 데 달려 있다. 한방 최고의 코 질환 치료 약물인 신이화(辛夷花)라는 단어 앞에 매울 신(辛)자가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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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예방의학이다. 질병은 하루 이틀 조심한다고 예방되는 게 아니다. 신중하게 대비하고 좋은 습관들을 꾸준하게 실천해야 한다. 문명의 발전은 새로운 질병을 만들고 그 질병은 새로운 시대를 연다. 아이스크림, 에어컨, 냉장고는 필요 이상으로 인체를 차갑게 한다. 한의학에서는 차가운 음료수와 빙과류가 폐를 차갑게 만들어 콧물감기, 고뿔을 악화시킨다고 본다. 반면 뜨거운 햇살과 건강한 땀은 양기의 원천인 태양의 힘을 흡수해 면역계를 강화한다고 본다. 뜨거운 여름 태양에 피부를 노출시켜 감기를 예방한다는 바캉스 본래의 의미는 한의학의 이런 관점과 일치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코와 면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영조#감기#면역 강화#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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