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 주는 소주[이상곤의 실록한의학]<9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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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예부터 우리의 소주(燒酒)는 독주로 악명이 높았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의현이 북경을 다녀온 뒤 쓴 ‘경자연행잡지’를 보면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소주는 연중(燕中) 사람들은 너무 독하다고 해서 마시지 않고, 마셔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소주 빚는 집 위에 기와는 쉽게 낡아 몇 해마다 한 번씩 바꿔야 했다.”

워낙 독주를 즐기다 보니 소주를 더 독하게 마시는 방법도 만들어졌다. 소주를 한 번 더 증류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환소주(還燒酒)가 그것이다. 정조 때 권신 이갑이 쓴 ‘문견잡기’는 “청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환소주를 대단히 좋아하지만 한번 마시면 목구멍을 찌르기 때문에 한 번에 다 마시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썼다.

실록과 고서에는 소주를 먹고 경을 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이방우는 임금(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인데,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하였다.” “명종 때 김치운은 교리로서 홍문관에서 숙직을 하다가 임금이 내린 자소주(紫燒酒)를 지나치게 마셔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소주의 해독은 참혹한 것이다.”

소주는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금주령이 내려질 정도로 귀한 술이었다. 성종 때 사간 조효동은 “세종조에는 사대부 집에서조차 소주를 드물게 썼는데 지금은 보통 연회에서도 모두 쓰므로 낭비가 막심하니, 청컨대 모두 금지하도록 하소서”라고 진언한다. 당시 소주는 사치스러운 술이었으며, 약으로 쓰여 ‘약소주’라고도 불렀다.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시던 술이었는데, 점차 일반 서민에게도 보급돼 각 가정에서도 빚어 먹을 만큼 흔해진 것.

소주는 조선시대 각종 질환의 치료약으로도 쓰였다. 성종 때 권신 홍윤성은 금주령을 어기고 소주를 먹다 붙잡혔지만 술을 즐겼던 임금은 그를 너그럽게 용서했다. “비록 술을 금(禁)하더라도 복약(服藥)하는 것이 어찌 해롭겠는가? 대죄하지 말라.” 홍윤성이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름 설사병 치료를 위해 소주를 먹어 죄를 묻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옛 의서인 ‘양생요집’에는 “술은 약재로 적당히 마시면 모든 맥을 조화시키고 나쁜 독을 물리치며, 차가운 기운을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고 쓰여 있다. 실제 옛 의사들은 신체 이상에 약재 대신 술을 가지고 치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옛 조상들은 숙취를 어떻게 해소했을까. 동의보감은 오이나 칡즙, 녹차가 소주 독을 제거하는 효용이 크다고 했다. 애주가들이 소주에 오이를 넣어 마시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녹차는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심장과 위장 운동이 활발해진다. 이뇨 작용도 강해 소변을 보면서 주독도 빠져나간다.

동의보감에는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게 하는 여러 가지 처방이 나온다. 만배불취단, 신선불취단, 취향보설이 바로 그것. 이 처방의 공통점은 모두 칡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칡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려 잎사귀로 수분을 증발시키듯, 술로 생긴 위장습열을 증발시킨다는 약리다. 말린 칡꽃과 팥꽃을 8g씩 끓여 차처럼 마시는 쌍화산은 가장 아름다운 ‘해장차’라 하겠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소주(燒酒)#독주#자소주(紫燒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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