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은 가도 규제는 남는다[동아 시론/한순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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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온라인 강의 확산은 ‘시한부’
코로나 종식 땐 원래 규제대로 복귀
경제는 生物인데 낡은 틀에 발목
‘3법’만 남긴 유방의 지혜 배워라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자주 전쟁에 비유되며 일반적으로 경제학 교과서에서 다루는 경제위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경제는 믿음에 기초한다. 우리가 돈을 주고 바로 물건을 받는다면 괜찮겠지만 경제의 많은 부분이 소위 ‘외상’이라고도 부르는 신용거래다. 어떤 물건을 주문하고 선금을 줬는데 선금을 받은 회사 또는 그 회사가 거래하는 은행에 문제가 생겨 물건은 받지 못하고 선금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경제 주체들 사이에 불신이 생긴다. 이런 불신을 없애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지금도 많은 경제학자가 불신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로 인한 불황의 이유는 불신이 아니라 질병이다. 상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만나서 이야기하면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경제활동을 줄이는 것이 불황의 원인이다. 따라서 질병을 치유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해결 방법이 없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치료제나 백신 개발 같은 질병에 대한 대응법이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불황을 빠져나올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론상으로는 정말로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전쟁 이전과 이후의 사회와 경제가 같을 수 없듯, 질병에 의한 재난 이전과 이후의 사회와 경제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현재 가장 큰 화두는 온라인 비대면 강의다. 강의실에서 만나면 감염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수업을 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연세대는 작년까지 온라인 강의가 전체 강의의 1% 미만이었지만 금년에는 100% 온라인 강의다. 코로나가 진정된다고 해도 다시 온라인 강의 1%였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우수한 대학들이 모두 온라인 수업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고 가까운 미래에는 현실과 구분하기도 어려운 가상현실 강의가 나올 것이다. 이전같이 99% 강의실 강의만 고집하는 대학은 곧 도태될 것이다.

문제는 교육부다. 교육부는 대학 강의에서 온라인 강의 비율이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한시적으로 100% 온라인을 허용했지만 코로나가 진정되면 아마 다시 20% 규정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한국의 온라인 교육 시장은 이 규정 하나로 발이 묶이게 된다.

초한지(楚漢志)에서 유방은 법이 엄하기로 유명한 진나라를 무찌르고 관중에 들어가 기존의 법을 모두 폐지하고 약법 3장을 발표했다. 살인을 한 자는 죽이고,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훔친 자는 그에 따라 벌하고, 그 외의 진나라 법은 모두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이 정책은 진나라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진나라의 경제를 발전시켜 유방이 항우를 이기는 기반이 마련된다.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전쟁이든 코로나라는 질병이든 무너진 경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맨손이었던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기적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낸 세대를 생각해 보면 세계적인 경제 대국인 현재의 대한민국은 코로나 경제 침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정부의 규제들이다. 온라인 강의를 한 예로 들었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과거의 경제 환경을 놓고 만든 규정들이 가득 차 있다. 경제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풍요롭게 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분야다. 다시 말해 경제의 원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 등 전에 들어보지 못한 질병에 의한 경제위기가 21세기 들어서는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경제 환경에서 현 정부는 20세기에나 맞을 듯한 과거의 유물 같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보호법, 52시간 노동 등 온갖 경제 규제를 만들어 형사처벌을 병행하며 강제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전에 규제에 겁을 먹게 된다.

코로나를 극복하는 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질병 이후의 경제 회복에 적합한 새로운 ‘약법 3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질병 극복은 하고도 경제 회복은 ‘F학점’을 받게 될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정부의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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