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운전대에 손가락을 걸쳐 놓는 이유 [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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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일상이 그때 혁신의 결과
유효기간 끝나기 전 혁신을 허하라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대기업 부장인 남자는 주말에도 지방을 자주 오간다. 새벽에야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지만 귀경길엔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일쑤다. 이럴 때 그는 ‘스마트 크루즈’ 기능을 켜둔다. 고속도로에서만 작동하는 자율주행 기능으로 그가 운전하지 않아도 앞차와의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나른한 오후라 그는 마음껏 깜빡 졸거나 스마트폰을 보지만 단 하나, 운전대에 왼쪽 검지를 걸쳐 둔다. 손가락을 떼면 이 차의 스마트 크루즈 기능이 꺼지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도로교통법 48조 ‘모든 운전자는 조향장치(핸들)와 제동장치(브레이크) 등을 정확하게 조작해야 한다’를 폭넓게 해석해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면 자율주행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지금은 모호한 이 법이 올해 안에는 ‘손을 뗀 지 15초 이내에 시각 경고, 30초 이내엔 청각 경고 추가, 1분 이후엔 자율주행 기능 해제’라는 명확한 규정으로 바뀐다.

남자는 생각한다. ‘곧 완벽한 자율주행차 시대가 올 텐데, 지금 자율주행을 규제하는 법이 한 번 만들어지면 이걸 고치는 법을 만들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앞으로도 계속 손가락을 걸치고 있어야 하겠구나.’

맞벌이 부부인 여자는 ‘생활 도우미 앱 3종 세트’가 없었다면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고1, 중3 딸을 키우는 그녀는 매일 배달앱을 사용해 아이들 식사를 챙긴다. 배달앱이 등장하기 전까진 출근길이 너무 바빴다. 아침밥을 차려놓는 동시에 아이들이 먹을 저녁밥과 반찬을, 세 칸으로 나뉜 큰 접시에 담아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놓는 ‘신공’을 발휘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방학이 그래서 그녀에겐 큰 재앙이었다.

청소는 또 어땠나. 알음알음 구한 가사도우미는 중간에 그만두기 일쑤였고, 일주일에 한두 번 까먹지 않고 현금을 마련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개인이 아닌 회사와 계약해 지정한 요일과 시간에는 무조건 서비스가 진행되도록 하는 청소앱의 등장은 희소식이었다. 카드 결제까지 돼 그녀의 생활습관과도 딱 맞아떨어졌다.

최근 말이 많은 ‘타다’와 관련해 그녀는 서비스가 정지될까 떨고 있다. 직장과 그리 멀지 않은, 완전 주거지에 사는 그녀는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택시가 잡히지 않아 집 가는 게 야근보다 더 큰 일이었다. 호출 순서대로 배차가 되는 타다가 등장한 이후 퇴근 걱정은 접어뒀다. 무엇보다 그녀가 직장에 있는 동안 아이들을 학원으로, 봉사활동 장소로 실어 날라야 할 때 이 서비스는 유용했다. 출발지, 도착지를 지정해 미리 결제한 뒤 호출하면 가깝다고 거부하지 않고 바로 서비스되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각한다. ‘이게 바로 서비스 혁신이 아니면 대체 뭐가 혁신이란 말인가.’

혁신은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바꾼다. 일상에 스며들다 보니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한때 혁신이었다는 점을 종종 까먹지만 자동차가, 신문이, TV가, 가까운 과거엔 마트가 혁신이었다.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고 넓고 깔끔한 공간에 식재료는 식재료대로, 생활용품은 생활용품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마트의 등장은 1990년대 중반엔 충격적 혁신이었다. 마트는 이제 온라인 혁신에 밀려 지점을 축소하고 마이너스 성장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혁신에는 이처럼 유효기간이 있다. 더구나 요새 혁신의 전장은 글로벌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요구가 한참 높아진 바로 그때 누가 재빨리 법을 고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느냐로 혁신의 주도권 싸움은 끝이 난다. 여야가 법안 처리에 합의했으나 여러 이유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데이터 3법’이 답답한 이유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자율주행차#스마트 크루즈#타다#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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