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마추어 국정원’ 對北능력이 더 걱정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잠입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사건 경위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꺼려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특사단 숙소에 잠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적 망신이며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가 인도네시아에 한국산 고등훈련기인 T-50을 수출하기 위해 러시아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2조 원을 들여 2003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T-50은 지금까지 단 한 대도 외국에 판매하지 못했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지난해에는 싱가포르를 상대로 한 수주전에서 거푸 쓴잔을 마셨다. 이번 일로 향후 수출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우리에게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에 나서 인도네시아 측에 해명하고 외교적 파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국정원은 국내외에서 국익(國益)을 지키는 최고 정보기관이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직무에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를 명시하고 있고,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예산 심의도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진다. 어느 나라에서나 외국 최고지도자의 특사단과 대표단이 방문했을 때 물밑에서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진다. 국정원이 실책을 저지른 것은 긴장의 끈을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국정원 직원은 지난해에도 리비아에서 부적절한 정보활동을 벌이다 리비아 당국에 체포돼 강제 추방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에게 빌다시피 해 사태를 해결했다. 이제 인도네시아에는 어쩔 것인가.

국정원의 국내 활동이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면 훨씬 은밀하고 긴박하게 수행해야 할 대북(對北) 작전과 첩보수집 능력은 더 걱정스럽다. 북한은 최근 평북 동창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을 완공한 데 이어 함북 풍계리에서 제3차 핵실험을 할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내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한 북한의 속내를 파악하는 첩보전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뒤 스스로 거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위상은 한번 추락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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