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反시장적 기업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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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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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산업계의 이익을 무조건 감싸지 않았다. 그는 불필요한 정부 규제와 정경유착,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했지만 기업인들의 직역(職域) 이기주의가 초래할 위험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스미스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함께 모이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일단 모이면 그들의 대화는 항상 소비자들을 우롱할 술수나 가격상승 결의 따위로 끝을 맺는다.”

▷전선(電線) 판매가격 결정과 납품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일삼은 13개 전선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LS 가온전선 대한전선 삼성전자 등은 2003년부터 4년간 대리점에 적용할 전선제품 가격 기준표를 공동 작성하는 방식으로 매년 가격을 올렸다. KT 현대건설 등이 발주한 전력선이나 통신선 입찰 과정에서 전선업체들끼리 짜고 치는 수법으로 이익을 나눈 사례도 드러났다. 얼마 전에는 액화석유가스(LPG), 우유제품, 치킨 가격 담합 의혹도 불거졌다.

▷기업의 담합은 경쟁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미치는 반(反)시장적 범죄다. 산업계가 틈만 나면 반기업 정서의 폐해를 들먹이면서 뒤에서 이런 짓을 하면 국민의 불신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경제적 권익은 기업의 이해(利害)보다 훨씬 중요하다. 18세기 영국 상인들의 부도덕한 행태가 21세기 한국에서 재현된다면 정부는 공정한 심판으로 시장의 규율을 바로 세워야 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쓴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시장의 자유를 찬양하는 상공회의소 연설자들도 막상 시장 독점권이나 정부와의 전매특약 같은 특혜가 주어졌다 하면 ‘얼씨구나’ 하고 춤을 출 것”이라고 꼬집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에서는 ‘이익의 사유화와 손해의 사회화’라는 말이 나왔다. 돈을 벌면 자신들이 챙기고 경영이 어려워지면 정부에 손을 내미는 민간기업 및 금융회사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고질적 담합 관행은 기업의 일부 문제 가운데도 우선 깨뜨려야 할 구태(舊態)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기업의 불법, 탈법을 방치하는 나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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