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승/선진국선 그린벨트 없어도…

  • 입력 1999년 7월 27일 19시 48분


수많은 선진국의 대도시에는 그린벨트라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쾌적한 환경을 지니고 산다. 그린벨트가 없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좋은 환경을 지키고 있는가. 바로 철저한 국토이용계획 때문이다. 선진국에는 계획없는 국토이용이나 개발은 없다. 공장을 세우거나 주택의 건축허가가 나려면 반드시 국토이용계획 또는 도시계획에 합치돼야 한다.

이러한 국토이용 계획은 환경보전에 치밀하고 철저하다. 어떤 집의 정원수를 옮기려 해도 정부 허가가 필요한 나라도 있다. 집의 고도 층수 색깔 등이 번지별로 규제되는 상세계획을 가지고 있는 국가도 많다. 시골 길가에 집 한채를 지을 때도 상하수도 교통 환경평가 등 도시계획에 합치돼야만 한다.

한국은 어떤가. 한마디로 계획없는 개발이며 이것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국토의 26%를 차지하는 준농림지 개발이 허용되자 결과가 어떠했는가. 팔당수원지 주변에는 지금도 산림지를 허물고 건물과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있지 않은가.

국토가 이처럼 무계획적으로 이용되는 한쪽에서는 국토의 5.4%라는 땅은 그린벨트로 묶여 여기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한국 국토관리와 환경의 문제점은 ‘계획없는 개발’과 ‘개발의 전면금지’라는 양 극단만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양 극단의 후진적 구도를 무너뜨리고 철저한 국토이용 계획으로 환경을 지키는 선진적 구도로 옮겨가야 한다.

한국처럼 땅은 좁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국토를 일절 활용하지 말고 보존만 하는 방법으로 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이같은 방법이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바람직한 방향은 환경친화적으로 개발해 이용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현재의 그린벨트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

그린벨트가 환경을 지키는데 얼마간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환경친화적인 국토이용계획과 도시계획에 입각해 개발이 허용되는 시대에는 그린벨트라는 것이 전혀 필요가 없다. 그런 시대를 지금 열어야 한다.

그린벨트가 도시과밀을 막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설정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결과적으로 그린벨트 때문에 서울의 도심은 과밀고층화하고 그린벨트 밖으로는 위성도시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린벨트라는 제도 자체를 없애고 이것을 국토이용계획과 도시계획을 강화해 철저히 집행하는 방향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법만으로 다스리더라도 공원용지나 보전녹지 또는 자연녹지 등으로 지정하면 환경을 지키는데는 오히려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국의 모든 그린벨트를 전면 해제하고 그 대신 그 지역에 대한 철저한 환경영향 평가를 실시해 공원용지 보존녹지 자연녹지 생산녹지 또는 주거지역 등으로 다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일부만 풀어주고 일부는 묶어둔다면 사회적인 불만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그리고 사유재산권의 침해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반대하는 분들의 땅에 교대로 그린벨트를 치자면 여기에 동의하겠는가. 사람들의 이해가 대립되는 사안은 원칙대로 밀고가야 문제가 풀린다. 정부는 국토관리 정책을 선진화한다는 큰틀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계획없는 개발은 절대 없어야 하며 계획은 반드시 환경친화적이라야 한다.

박승(중앙대교수·전 건설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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