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46>그의 운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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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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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어디 보자, 77년 정사년 오월 생이라….”

‘해천 스님’이라고, 하지만 딱 보기에도 그냥 ‘해천이 아저씨’ 같은, 배가 불룩 튀어나온 대머리 사내가, 낡은 공책 한가운데 사주를 받아 적으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앉은뱅이책상 뒤에 앉아 있는 ‘해천 스님’은, 아디다스 추리닝에 러닝셔츠 차림이었다. 막 점심을 먹었는지, 방 한쪽 구석엔 빈 짜장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축시 생이라고 했지?”

“네….”

사내의 물음에 경수는 어쩐지 조금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랐는데, 경수는 어느새 무릎까지 꿇고 있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들어온 점집이 맞았다. 외근을 나왔다가 들렀다는 경수와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운 직후였다. 커피나 한잔 마시고 헤어질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경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우리도 저거나 한번 볼까? 경수가 턱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가니 ‘사주, 운세-해천 스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사주? 돈 아깝게 뭐 저런 걸 봐?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경수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쪽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냥, 심심풀이로…. 나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래, 어차피 커피 마실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별 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얘가 무슨 고민이 있나,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천간에 수(水), 지지에는 화(火). 아이고, 화(火)하고 수(水)하고 이렇게 싸워대는 팔자니, 이게 힘들지, 힘들어….”

사내가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으며 경수를 바라보았다.

“안 좋은… 운세인가요…?”

경수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한 사오 년 안 좋았지? 길운이 들어와도 문이 닫혀 있는 형국이니, 쯧쯧…. 고생했겠어….”

사내의 말에 경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심심풀이라더니…. 나는 경수의 변한 얼굴을 보고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여간 예전부터 귀 얇은 거 하나는 유명했으니까. 이건 무슨 마분지로 만든 귀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인 게 내년부터는 차츰차츰 좋아지겠어. 용신이 괜찮아…. 부부 사이도 잘 풀리고.”

“정말 좋아지는 거예요? 사실… 제가 요즘 부부 관계가 좀 안 좋아서….”

경수는 작년, 의욕적으로 시작한 커피숍이 망한 이후 아내와 별거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수원에서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두 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내하고 나이 차이가 좀 나나?”

“여섯 살 차이입니다.”

“여섯 살이라…. 그래서 그런가? 내후년쯤에 자네에게 자식 운이 하나 있어.”

“자식이요?”

“그해에 복락이 꽃을 피울 사주야. 사업도, 자식도, 다 자네 안으로 들어올 대운이야.”

사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누런 이를 드러냈다. 그래, 그래, 이왕 심심풀이로 들을 말, 이런 말이 백 번 낫지. 나는 어쩐지 ‘해천 스님’이라고 자칭하는 그 사내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 곧 새해니까….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천 스님’이 대신해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귀가 마분지인 내 친구 경수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사업도, 자식도, 다 자기 안으로 들어온다는데… 뭐 더 들을 말이 남았다고….

“한데요, 스님….”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경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제가 이게… 그러니까… 육 년 전에 수술을 했는데…. 그럼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경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내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사주 책자를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분명… 자식 운이 있는데…. 음, 그럼… 그게 그러니까… 묶은 건가, 아예 자른 건가?”

“의사한텐 묶어달라고 했거든요….”

나는 그 둘의 대화가 어쩐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이게 뭐… 그러니까… 그 경우에도 저절로 풀리는 일도…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그럴까요? 내후년엔 저절로 풀릴까요? 아니면, 제가 미리 의사한테 가서….”

“뭐, 그렇게까지야… 대운이 오면 저절로….”

경수는 말을 할수록 점점 더 진지한 표정이 되었고, ‘해천 스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 둘의 옆에서,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 그 사람의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며 앉아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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