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노림수는 OPEC 영향력 약화… 불붙은 ‘원유 패권 경쟁’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6일 04시 30분


[트럼프, 마두로 축출]
겉으론 “美 손해 보전” 내세웠지만, 매장량 세계 1위 베네수엘라 장악해
실제론 美 에너지 안보 강화 나서… “韓, 수급처 다변화 등 대응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제법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체포·압송을 강행한 배경에는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으로 봐 온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원유 매장량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사실상 통제함으로써 국제 원유 시장에서 OPEC의 힘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원유 패권 경쟁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미국이 압도적 힘을 앞세워 국제 질서를 무시하고 경제적 이해를 우선시하는 행보에 나서면서 전 세계적 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에너지 안보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트럼프, “빼앗긴 석유 되찾을 것”

트럼프 대통령이 주권 국가인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전격적인 군사 작전을 펼친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식 명분으로는 ‘불법 마약 거래 단절’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장악해 미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려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야심을 대놓고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해 미국으로 강제 이송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거대 석유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가서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투자해 심각하게 파괴된 석유 인프라를 복구할 것”이라며 “지하에서 엄청난 양의 부를 끌어올려 그 수익의 일부를 그 나라가 우리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보상 형태로 보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피해는 과거 베네수엘라 석유 사업에 투자했던 미국 석유 회사들이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국유화 정책으로 쫓겨난 사건을 가리킨다. 1999년 취임한 차베스 전 대통령은 2007년 오리노코 벨트 내에서 미국 기업들이 운영하던 석유 프로젝트를 강제로 국유화했다. 당시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프로젝트별로 보유하던 40% 안팎의 지분을 최소 60% 이상으로 높이도록 강제로 계약을 변경했다.

미국 석유사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지분을 몰수당했다. 이 회사들은 반발하며 국제투자분쟁(ISDS)에 나섰다. 코노코필립스와 엑손모빌의 청구액은 각각 300억 달러, 150억 달러를 웃돈다. 두 회사는 총 100억 달러가량의 배상 판정을 받아냈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로 실제 회수한 금액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에너지 기업이 베네수엘라에 재진입해 석유 채굴에 나서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5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계획을 시행하는 데 1000억 달러(약 144조 원)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3032억 배럴로 세계 전체의 20%에 달하지만 기술력 부족과 인프라 붕괴 상황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대표적 원유 매장 지역인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분지 지역의 경우 시추 설비는 약탈당해 부품이 암시장에 팔려 나갔다. 지하 송유관에서는 원유 유출, 폭발, 화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한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석유 회사들은 베네수엘라 사업 재참여 여부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국제 유가가 공급 과잉으로 최근 5년 새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위험을 떠안고 베네수엘라에 들어갈 유인도 크지 않다.

● “韓 원유 수급 다변화, 비축 운용 고도화 시급”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이라는 지정학적 악재에도 국제 유가는 오히려 하락세를 보였다. 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배럴당 57.32달러)보다 소폭 하락한 배럴당 57달러 안팎으로 거래됐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금수 조치가 유지되고 있고, 실제 생산량도 많지 않은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에너지 기업의 주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장기적으로 베네수엘라발 원유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에 미국 엑손모빌 주가는 4일 한때 프리마켓에서 6% 넘게 상승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종목도 강세를 보였다. 5일 에쓰오일 주가는 5%, SK이노베이션 주가는 2% 넘게 올랐다.

정부는 이날 강기룡 재정경제부 차관보 주재로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하고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국제 유가와 금융 시장 변동성을 중심으로 사태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과 OPEC을 축으로 한 원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은 수급처 다변화와 전략 비축 운용의 고도화가 필요하다”며 “비축유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정교한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니콜라스 마두로#석유수출국기구#O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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