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혁신금융이 키운 스타트업… 日 NTT도 투자금 들고와

  • 동아일보

[이제는 혁신금융 전쟁] 〈1〉 전세계 돈 몰리는 싱가포르
산간지역 레이저 무선통신 업체… 日-인도-호주 등과 잇단 해외 제휴
‘제2 딥시크’ 마누스도 싱가포르로
“투자회사들 많아 자금 마련 쉽고… 양도-배당소득세 없어 투자 유리”

“보통 광섬유 랜을 설치하려면 1년이 걸리지만, 이 장치를 쓰면 2∼3시간 만에 통신이 연결됩니다.”

지난해 12월 15일(현지 시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게일랑 지역에 들어선 스타트업 ‘트랜스셀레스티얼’을 찾았다. 이 회사의 모하마드 다네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신속하고 저렴하게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다네시 CTO는 “광섬유 랜을 설치하려면 인허가, 땅 매립 등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 장비로 하면 레이저를 사용한 무선이라 간편하다”고 소개했다. 이 스타트업의 통신 기술은 싱가포르뿐 아니라 일본, 인도,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첨단 기술 하나만으로 세계 자금을 싱가포르로 끌어들인 것이다. 싱가포르가 스타트업 기술의 수혜를 누리고 세계의 투자금을 끌어모은 건 혁신 금융 덕분이었다.

● “벤처투자사 밀집한 싱가포르에서 사업해 성공”

트랜스셀레스티얼은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싶다’는 청사진을 품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지난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를 22억 명 정도로 추산했다.다네시 CTO는 “레이저 통신 기술로 세계 누구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6년 설립된 이 회사는 싱가포르로 글로벌 자금을 끌어모았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호주 등 여러 국가의 통신사들과 협업 중이다. 지난해 11월엔 일본 최대 통신 회사 NTT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일본은 지진, 지진해일(쓰나미), 태풍이 잦아 통신망을 빠르게 복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엠파워파트너스의 캐시 마쓰이 파트너는 “지진과 태풍으로 인해 통신 네트워크가 끊겨도 이 회사의 제품을 이용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복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스타트업을 창업한 다네시 CTO는 이란 국적이지만 싱가포르에 회사를 세웠다. 싱가포르에 혁신 산업을 수혈해 주는 ‘혁신 금융’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업은) 수백 곳의 벤처캐피털이 밀집한 싱가포르에서 사업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라고 자평했다.

싱가포르 서부 주롱 지역 스마트팩토리 건물에 들어선 수직 스마트팜. 2015년 설립된 아치센은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운 도시국가 싱가포르 경제의 한계 극복을 목표로 스마트팜 사업에 뛰어들었다. 싱가포르=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싱가포르 서부 주롱 지역 스마트팩토리 건물에 들어선 수직 스마트팜. 2015년 설립된 아치센은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운 도시국가 싱가포르 경제의 한계 극복을 목표로 스마트팜 사업에 뛰어들었다. 싱가포르=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싱가포르에서 스마트팜 사업에 뛰어든 ‘아치센’도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고 세계 곳곳과 협업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디지털 농식품 기업 ‘팜바이트’와 조인트 벤처를 세웠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 국경 부근의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JS-SEZ)에 스마트팜도 지었다. ‘제2의 딥시크’인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마누스는 지난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에 2조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인수됐다.

● 세제 혜택, ‘혁신금융’ 유입 촉진

싱가포르가 아시아 스타트업 요람으로 정착한 가장 큰 이유는 ‘혁신금융’이 강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정부에 따르면 2023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주요국 6곳(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의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 중 싱가포르 점유율은 73.3%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엄모 씨(48)는 “다양한 투자 회사들이 있어 운영 자금을 마련할 기회가 많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에 상속·증여세, 양도·배당소득세가 없는 점도 수많은 혁신 금융이 유입되는 배경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소재 한 벤처캐피털의 대표는 “투자 환경이 자유로운 데다 세대 간 자산 이전도 용이해 북미권, 유럽 투자사, 기관이 싱가포르를 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 전통 은행들 일찍이 ‘체질 변신’

싱가포르의 강점으로 꼽히는 ‘전통 은행의 체질 변신’은 한국 금융권이 배워야 할 과제로 꼽힌다. 싱가포르 은행인 DBS, UOB, OCBC는 가계대출 영업에서 벗어나 스타트업들이 차별화된 아이디어만으로 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는 아시아권 스타트업에 대출해 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OCBC는 창업 후 6개월∼2년가량 된 초기 스타트업에 최대 10만 싱가포르달러(약 1억1225만 원)를 빌려주는 ‘비즈니스 퍼스트 론’을 도입했다. UOB는 스타트업 해외 확장과 기술을 지원하는 ‘핀랩(Finlab)’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자회사 버텍스홀딩스의 추아 키 록 대표이사는 “싱가포르 정부는 은행이 스타트업 투자로 본 손실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은행들이 그 과정에서 투자 노하우를 익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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