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아

조은아 기자

동아일보 해외특파원

구독 61

추천

경제 기사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은퇴재테크 서적 ‘지금 당장 금퇴 공부’를 펴냈습니다.

achim@donga.com

취재분야

2024-03-25~2024-04-24
국제일반46%
유럽/EU18%
칼럼9%
국제경제6%
중동6%
환경3%
종합경기3%
국제정세3%
일본3%
사회일반3%
  • 伊, 코로나때 뿌린 ‘슈퍼보너스’에 재정 악화… 지원금 경계령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에서 더 이상의 적자를 막기 위해 새로운 정부 지원금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종의 세금 공제 제도인 ‘슈퍼보너스’ 같은 지원 정책 탓에 재정적자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는 우려를 반영했다.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는 EU 회원국 27곳의 GDP 대비 평균 재정적자 비율이 기존 3.4%에서 3.5%로 늘었다고 22일 밝혔다. 특히 이탈리아는 이 수치가 7.4%로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헝가리(6.7%), 루마니아(6.6%) 등도 재정적자 비율이 높은 나라로 꼽혔다. 이탈리아, 프랑스(5.5%), 스페인(3.6%) 등 회원국 11곳이 EU가 재정관리를 위해 정한 상한선인 ‘GDP 대비 3%’를 모두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재무부는 지난해 4월 ‘2023년 재정적자 목표치’를 GDP 대비 4.5%로 잡았다가 그해 9월에는 5.3%로 완화했지만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탈리아가 심각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이전 정부가 도입한 ‘슈퍼보너스’ 정책이 꼽히고 있다. 정부가 주택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비용의 최대 110%를 5년 동안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였던 2020년 도입돼 경기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탈리아 정부는 슈퍼보너스 관련 예산이 4일 기준 1600억 유로(약 234조 원) 이상 지출됐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중앙은행 또한 지난해에만 GDP의 약 4%를 슈퍼보너스 비용으로 지출했다고 공개했다. 정부 추정치의 5배를 웃도는 규모다. 이탈리아 은행은 의원들에게 “새로운 인센티브를 도입할 때 최근 조치(슈퍼보너스)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각종 지원금이나 공제 혜택을 시행하기 전에 재정적자에 미칠 영향을 따져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앙은행은 또 현 정부가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대한 감세 정책을 내년까지 연장하려 해 재정 관리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이달 초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과도한 적자를 우려했다. 유로뉴스는 “재정적자가 국가 경제성장에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과거 유럽을 괴롭혔던 재정적자의 악몽이 부활해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스라엘, 이란 때렸다… 美 반대에도 보복 강행

    이스라엘이 이란으로부터 사상 처음 본토를 공격당한 지 엿새 만에 이란의 군사기지에 대한 재보복을 강행했다. 이번 공격은 이란이 1일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에 대응해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에 대한 재보복 성격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는 ‘보복의 악순환’을 지속하며 긴장을 높여가는 모양새라 자칫 중동 지역 양대 군사강국 간 본격적인 전면전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ABC방송 등은 이스라엘이 19일(현지 시간) 이란 내 목표물을 미사일로 타격했다고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 국영TV는 이날 오전 4시경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350km 떨어진 이스파한 상공에서 무인기(드론) 3기가 목격됐고, 방공체계가 가동돼 모두 격추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당국자는 익명으로 외신에 “군이 이란 본토를 타격했다”고 밝혔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이번 공격과 관련된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스파한에는 이란 육군항공대 기지 등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등 이란의 ‘핵 인프라’가 밀집돼 있다. 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 핵시설에 피해가 없음을 확인했다”면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을 두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란은 앞서 이스라엘의 재보복 시 “즉각적이고 최대 수준으로 갚아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킴 도저 CNN방송 글로벌 이슈 분석가는 “양국 간 이러한 ‘확전 사다리(escalation ladder)’가 정말 끔찍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보복 공격에 국내외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코스피는 19일 장중 한때 3% 이상 급락했다가 오후 들어서는 낙폭을 줄여 42.84포인트(1.63%) 내린 2,591.86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20원 가까이 오르며 달러당 1390원 선을 돌파했다가 결국엔 9.3원 오른 달러당 1382.2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본 증시도 2.7% 급락하는 등 아시아 증시가 모두 약세를 보였다. 중동의 긴장 고조에 국제 유가도 이날 한때 4% 이상 급등했다.이스라엘, 핵시설 인접 軍기지 공습… 이란, 재보복땐 전면전 위험 [이스라엘, 이란에 보복 공습]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생일이스라엘, 6일前 ‘공격원점’ 타격이란 “드론 3대” 미사일 피격 부인… 외신 “이란 반격땐 5차 중동전 우려” 13일(현지 시간) 이란으로부터 본토에 대한 사상 첫 공격을 받은 뒤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겠다고 벼르던 이스라엘이 19일 새벽 이란을 타격했다. 이날은 이란 최고지도자이자 1989년부터 재임한 중동의 ‘최장 통치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85세 생일이다. 이스라엘이 이란 권력의 핵심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려 이란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은 언론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습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두 나라가 전면 충돌을 피하려는 수순이란 분석이 제기됐지만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높이다가 자칫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 美 “이스라엘 미사일, 이란 목표물 타격”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 등은 이날 이란 이스파한 북서쪽의 군공항 주변에서 세 건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란 IRNA통신에 따르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F-14 톰캣 전투기가 배치된 주요 공군기지에서 방공 포격이 이뤄졌다. 이번 공습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르스통신은 “군 레이더가 표적 가능한 물체였다”며 “이 지역 여러 사무실 건물의 창문이 깨졌다”고만 전했다.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CNN방송에 “이스라엘이 민간인과 핵시설을 피하고 군사시설을 표적으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이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데 이어 이란이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보복 공격한 뒤에 발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이 13일 공습 당시 미사일 발사처로 이용한 곳 중 하나가 이스파한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공격 원점을 타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스라엘이 이스파한 공격의 배후인지를 묻는 말에 답변을 거부했다고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다만 미 NBC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당국이 이란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줬는지를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당국은 공격 사실을 축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란 항공우주국 대변인 호세인 달리리안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현재로선 이스파한을 비롯한 국내에 미사일 공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인기(드론) 세 대가 날아왔지만, 방공망이 성공적으로 격추했다”며 “적의 작전은 굴욕적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란 국영방송 IRIB도 이스파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방송기자가 “도시는 안전하고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하는 뉴스 영상을 공개했다. 이란 국영TV 등은 이란이 국경 밖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이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는 점을 축소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 “이란의 다음 반응 예측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눈은 양국의 보복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지, 아니면 여기에서 마무리될지에 쏠린다. 일단 이란과 이스라엘의 주요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신들도 이번 공격을 ‘제한적 보복’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공격에 대한 조용한 초기 대응은 이란과 이스라엘이 확대를 피하고 싶어 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마크 매컬리 미 육군 퇴역 소장은 CNN에 “이스라엘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고 이란에 ‘계산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이 CNN에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추가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면 “즉각적이고 최대 수준”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또 공격 이후 이스라엘에선 ‘보복 강도가 약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이날 X에 “(보복이) 약했다”는 한마디를 올렸다. 이번 공격이 양국 보복전의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구체적인 피해 규모와 배경이 드러나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갈등 확대를 억제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하나의 잘못된 계산이나 오해, 실수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 2024-04-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스라엘, 핵시설 피해 ‘제한적 보복’…이란 재공격땐 전면전 위험

    13일(현지 시간) 이란으로부터 본토에 대한 사상 첫 공격을 받은 뒤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겠다고 벼르던 이스라엘이 19일 새벽 이란을 타격했다. 이날은 이란 최고지도자이자 1989년부터 재임한 중동의 ‘최장 통치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85세 생일이다. 이스라엘이 이란 권력의 핵심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려 이란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미국은 언론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습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두 나라가 전면 충돌을 피하려는 수순이란 분석이 제기됐지만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높이다가 자칫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美 “이스라엘 미사일, 이란 목표물 타격”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 등은 이날 이란 이스파한 북서쪽의 군공항 주변에서 세 건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란 IRNA통신에 따르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F-14 톰캣 전투기가 배치된 주요 공군기지에서 방공 포격이 이뤄졌다.이번 공습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르스통신은 “군 레이더가 표적 가능한 물체였다”며 “이 지역 여러 사무실 건물의 창문이 깨졌다”고만 전했다.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CNN방송에 “이스라엘이 민간인과 핵시설을 피하고 군사시설을 표적으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이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데 이어 이란이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보복 공격한 뒤에 발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이 13일 공습 당시 미사일 발사처로 이용한 곳 중 하나가 이스파한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공격 원점을 타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스라엘이 이스파한 공격의 배후인지를 묻는 말에 답변을 거부했다고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다만 미 NBC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당국이 이란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줬는지를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이란 당국은 공격 사실을 축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란 항공우주국 대변인 호세인 달리리안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현재로선 이스파한을 비롯한 국내에 미사일 공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인기(드론) 세 대가 날아왔지만, 방공망이 성공적으로 격추했다”라며 “적의 작전은 굴욕적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했다.이란 국영방송 IRIB도 이스파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방송기자가 “도시는 안전하고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하는 뉴스 영상을 공개했다. 이란 국영TV 등은 이란이 국경 밖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이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는 점을 축소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란의 다음 반응 예측할 수 없다”국제사회의 눈은 양국의 보복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지, 아니면 여기에서 마무리될지에 쏠린다. 일단 이란과 이스라엘의 주요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파장을 축소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신들도 이번 공격을 ‘제한적 보복’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공격에 대한 조용한 초기 대응은 이란과 이스라엘이 확대를 피하고 싶어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마크 맥컬리 미 육군 퇴역 소장은 CNN에 “이스라엘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고 이란에 ‘계산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안 이란 외무장관이 CNN에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추가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면 “즉각적이고 최대 수준”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또 공격 이후 이스라엘에선 ‘보복 강도가 약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은 이날 X에 “(보복이) 약했다”는 한마디를 올렸다. 이번 공격이 양국 보복전의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특히 구체적인 피해 규모와 배경이 드러나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갈등 확대를 억제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하나의 잘못된 계산이나 오해, 실수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9
    • 좋아요
    • 코멘트
  • ECB, 미 연준과 정말 ‘다른 길’ 가나[조은아의 유로노믹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큰 변수가 없으면 곧 금리를 인하할 것임을 시사해 눈길을 끌었다. ECB가 금리 인하를 시사한 게 이번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시장은 갸웃하는 분위기였다.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류를 주도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계속 시사했다가 돌연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ECB가 미 연준의 금리 방향과 비슷하게 움직이던 통상의 공식을 깨고 정말 다른 길을 가려는 것일까.● 힘 받는 ECB ‘6월 금리 인하론’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6일(현지 시간)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큰 충격이 없다면 제한적 통화정책을 완화할 시기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가상승 둔화세와 유가 급등 등 여러 변수를 좀더 살펴봐야 하지만 현 상태가 유지되면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의미다.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서는 “추가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합리적으로 짧은 시간 내”라고 도 설명했다. 시장이 전망하는 ‘6월 금리 인하’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나왔다.라가르드 총재는 6월 금리가 인하된 뒤 추가적으로 금리가 인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16일 CNBC에 “나는 그 점을 매우 분명히 밝혔으며 고의적으로 어떤 금리 경로도 미리 약속하지 않는다”며 확답을 피했다. 또 “외부에는 큰 불확실성이 있다”며 “우린 이러한 (변수의) 확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데이터를 살펴보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사실 라가르드 총재가 금리 인하를 시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ECB는 11일 기준금리를 연 4.50%로 5차례 연속 동결한 뒤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목표치에 수렴하고 있다는 신뢰가 더욱 높아진다면 현재 (금리) 수준을 낮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금리 인하 방침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것이다. 이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ECB가 연준에 의존하지 않으며 데이터에 의존해 금리를 결정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투자자들은 이런 발언에 주목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6일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며 당장 금리 인하가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 “유럽 인플레, 미국과 본질적으로 달라”ECB가 독자적인 길을 가려는 공식적인 이유는 우선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어서다. 유럽연합(EU)이 17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확정치는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해 전월 상승폭(2.6%)에 비해 둔화됐다. 외신들은 이 수치가 ECB의 6월 금리 인하를 유도할 것으로 봤다.유럽의 인플레이션은 미국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달라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란 분석도 있다. 칼 웰런 아일랜드 더블린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유럽의회의 ‘ECB와 미 연준의 통화정책 비교’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면에서 더 영향을 받고 강한 수요엔 덜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보통 임금 상승 등 수요가 주도하는 물가 상승이 더 심각한 것으로 인식된다.웰런 교수는 이어 “시장은 연준이 ECB보다 통화정책을 더 완화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올해 그 반대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CB가 연준보다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다고 이미 수개월 전에 관측한 것이다.이 외에 유럽의 성장속도가 미국보다 느리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유럽의 경제 우등생으로 꼽히던 독일과 영국마저 경기침체를 겪는 등 유럽의 경기가 녹록치 않다. 이에 ECB는 그간 유지해온 금리를 낮춰 경제에 활력을 줘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17일 한 회의에서 유로존과 미국 경제가 상당히 격차가 남을 지적했다. 2008년 이후 미국 경제는 유로존 경제보다 75% 더 많이 성장했다. 로베르트 홀츠만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달 30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럽경제가 미국보다 더 느리게 성장하고 있어 유럽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했다. ● 변수는 ‘유가급등’, ‘3개의 전쟁’다만 ECB는 최근 고조된 중동 긴장에 따른 유가 상승을 주시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16일 인터뷰에서 “모든 원자재 가격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그러한 움직임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유가는) 분명히 에너지와 식품에 직접적이고 빠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예상 외로 급등하면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금리 인하 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ECB 정책위원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도 성명을 통해 6월 금리 인하 여부는 인플레이션 하락에 달려 있다면서 ECB 통화정책의 가장 큰 위험으로 이란-이스라엘 긴장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꼽았다.일각에선 ECB가 연준을 따르지 않았다가 유로화 가치가 심각하게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의 통화정책 장기 완화가 유로화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ECB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17일 한 대담에서 “ECB는 환율을 목표로 삼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것을 매우 면밀히 살펴본다”고 설명해 시장의 우려를 달래려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9
    • 좋아요
    • 코멘트
  • 獨, 수량 많고 값싼 ‘목재 연료’ 각광… EU도 “재생 에너지” 보조금

    “최악의 에너지난이 닥치면 ‘장작’이 대안이다.” 독일 인터넷매체 ‘복스’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로 에너지난이 불거졌던 2022년 ‘독일에서 갑자기 장작 수요가 급증한 이유’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독일은 유럽 여러 국가 중에서도 유독 에너지 위기가 극심했다. 그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2021년 기준 60%로, 유럽 국가 중 유독 높아 ‘가스 부족’ 사태가 심각했다. 이에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아도 독일에 워낙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한 목재가 대체 에너지원으로 떠올랐다. 실제 독일 대형마트에서는 가정용 연료로 쓰이는 장작들이 대용량으로 판매된다. 독일 산림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발(發) 가스 위기가 닥치기 전인 2020년에도 독일에선 전체 가구의 약 13%인 550만 가구가 난방용 장작을 사용했다. 독일 가정에서 연료용 목재는 연평균 200만 m³가량씩 소비되고 있다. 목재 연료는 가스의 ‘대체 에너지원’이자 ‘친환경적’이란 점에서 선호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원의 경우 보통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목재도 바이오매스 연료로 분류된다. 식물, 유기물질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오매스 연료는 EU 신재생에너지의 6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는 건축 자재로 시멘트나 철근보다 목재를 권장하고 있다. 다만 2022년 가스 수급난으로 장작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도 이례적으로 올랐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8월 장작과 목재 펠릿 가격이 전년 대비 86% 상승했다. 주변에 흔히 보이던 나무가 ‘금(金)나무’가 돼 버린 셈이다. 목재 연료는 EU에서 논쟁의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신재생 전력 관련 법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장작의 미래’를 두고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장작은 EU 관련법에 따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인정받아 보조금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장작 공급을 위해 나무를 잘라내도 그 자리에서 다른 나무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재 생산 단체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며 목재가 EU의 탄소저감 정책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산림보호 단체들은 장작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문제 삼고 있다. 장작 생산을 위해 나무를 마구잡이로 잘라내면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위기가 심각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일자리 100만개, 숲에서 미래 찾는 청년들

    “산림관리 전문 자격증을 준비 중이에요. 숲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 외곽 지역에 있는 프라이징 숲에서 만난 20대 루카 카파운 씨는 “산림 자격증을 따면 산림 대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체코와 인접한 국경도시 노인부르크포름발트의 산림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숲에서 3년간의 실습 과정을 밟고 있다. 하루 8시간씩 통나무의 잔가지를 쳐내고 병충해나 강풍으로 파손된 나무를 정리하는 등 숲을 관리한다. 카파운 씨 등 10, 20대 세 명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울창한 나무 2, 3m 높이에 각각 로빈후드처럼 매달려 있었다. 안전 장비를 찬 채 팔뚝만 한 칼로 나무의 잔가지를 잘라내면 잔가지들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1주간의 직업탐색 실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15세 마르쿠스 마이어 군은 “숲은 항상 꼭 필요하고 기후변화가 중시되니 숲 전문가는 전망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숲은 광활한 ‘미래 일터’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임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었다. 관련 기업은 11만5000곳, 기업들의 매출은 1830억 유로(약 267조 원)다. 독일은 산림 관리를 위해 2021년 ‘숲 전략 2050’ 정책을 마련해 일자리뿐 아니라 다양한 목재 등 임산물을 생산하는 등 ‘숲 이코노미’를 키우고 있다.獨, 온난화에 나무 79% 훼손… 2050년 ‘기후 스마트숲’으로 전환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5〉독일의 ‘숲 이코노미’獨영토 32%가 숲, 식물 2892종 서식… 각종 임산물에 수출용 통나무 생산가공-제지 등 관련 일자리 100만개고온-가뭄 등에 나무 고사비율 최고… ‘숲 전략 2050’ 세워 수종 세대교체 “올해 봄이 유독 일찍 시작됐어요. 기후변화로 봄이 더 더워졌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시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프라이징 숲. 친구들과 산책하던 슈테판 츠바크 씨는 3월 말인데도 더워진 날씨에 그늘에서 잠시 휴식하며 이같이 말했다. 방문객들은 두꺼운 점퍼 대신 얇은 외투만 입은 채 숲속을 거닐었다. 따사로워진 햇볕을 피해 주차장 차량이나 안내소 그늘에 멈춘 방문객들이 보였다. 츠바크 씨는 “숲은 탄소를 빨아들이고 그늘을 만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해주는데, 요즘 온난화와 가뭄 등으로 많이 훼손돼서 더욱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의 매일 이 숲을 찾는 요제프 마이어 씨는 벌써부터 올여름 무더위를 걱정하며 “날씨가 아주 더울 때도 숲은 시원하고 공기의 질이 좋다”며 “요즘 온난화로 벌레가 늘어 나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숲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은 기후변화 시대에 숲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숲 덕에 공기의 질이 개선되고 더위를 덜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에른주는 전체 면적의 37%인 260만 ha가 숲이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산림 면적이 가장 넓어 ‘독일의 허파’ 역할을 한다. ● 숲은 탄소 흡수망이자 자원 독일 영토에서 약 32%를 차지하는 숲에는 다양한 식물 2892종이 서식한다. 숲에 뿌리내린 다양한 식물들은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탄소 흡수망’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산하 신재생연료전문기관에 따르면 숲은 이산화탄소를 연평균 5200만 t씩 흡수하고 있다. 프라이징 숲을 관리하고 있는 헤르베르트 보어헤르트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LWF) 박사는 “숲은 홍수를 방지하고 이상고온을 완화해주는 등 기후변화 시대에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숲은 탄소 저감뿐 아니라 임산물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통계를 보면 독일 목재 재고량은 2017년에 ha당 358m³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독일에서 숲은 자원의 보고인 셈이다. 특히 건축 및 가구 자재 등에 쓰이는 통나무는 독일의 주요 자원이다. 이날 프라이징 숲속 곳곳엔 단면이 대형 트럭 바퀴만 한 통나무들이 잘린 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독일 연방정부에 따르면 2022년 독일이 수출한 통나무는 수입량보다 400만 m³ 더 많았다. 통나무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된다. 공공 기관인 LWF는 물론이고 민간 주거 지역에서도 목재 건축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목재 산업은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돼 정부의 지원 속에 성장하고 있다. 건물 자재로 쓰이는 시멘트나 철강은 제작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된다. 반면 목재는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 탄소를 30년가량 저장한다. 바이에른주 주택의 21%가 목재로 건설된다. 독일 연방정부는 “가공, 제지, 인쇄 및 출판을 포함한 산림 및 목재 산업 일자리는 100만 개를 넘는다”고 밝혔다. 숲에서 직접 일하는 직업(4%)을 포함해 인쇄 및 출판(30%), 목재 건설(24%)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임업 관련 기업 매출만 1830억 유로(약 267조 원)에 달할 정도로 ‘숲 이코노미’가 뿌리내렸다.● 기후변화 위기, ‘숲 전략 2050’으로 대응 다만 독일의 숲도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과 가뭄, 병충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독일 전역의 나무 79%가 손상되거나 죽고 있다. 환경 전문 저널인 ‘글로벌 변화생물학’은 1953∼2020년 68년간 독일 숲을 연구해 보니 나무의 고사 비율이 1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저널은 “건조하고 더운 기후가 광합성, 호흡 등 나무의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곤충, 곰팡이와 서리 및 가뭄 등 외부 요인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1년 산림을 관리하기 위한 ‘숲 전략 2020’을 세웠다. 기후변화 대응, 숲과 생물다양성 보호, 목재 활용, 스포츠 및 여가 장소 활용 방안 등을 총망라한 대책이다. 10년 뒤인 2021년엔 이를 발전시킨 ‘숲 전략 2050’을 마련했다. 비영리단체 괴테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이 정책을 바탕으로 전국 산림 중 270만 ha를 기후변화에 강한 나무로 바꿔 심고 관리하는 ‘기후 스마트 숲’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정책에 참여하는 산림 관리자들에게는 15억 유로(약 2조2000억 원)를 지급한다. 전문가들은 숲의 수종 교체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어헤르트 박사는 “정부는 기후변화에 맞춰 숲을 세대교체해야 한다”며 “나무 종을 요즘 환경에 맞도록 서둘러 바꾸지 않으면 숲이 위험해 처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숲의 위기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공동연구센터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분석 결과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1년 치를 줄이려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토를 합한 면적 이상의 숲을 재건해야 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영국의 미래, ‘숲 학교’에서 자란다

    “안전을 위한 규칙만 잘 지키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9일(현지 시간) 영국 중동부 링컨셔주 링컨시에 있는 한 숲속. 아들을 이곳에 있는 ‘숲 학교’에 6년째 보내고 있는 타미 돌링 씨는 “숲 학교의 장점은 자유로운 교육”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돌링 씨의 아들 이든 군(12)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나무를 타고 있었다.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를 오를 때 어떻게 해야 안전하다고 했는지 기억하느냐”고 묻자, 이든은 “나뭇가지가 팔목보다 굵은지 확인하면 된다”며 “양손과 양발 4개 중 3개는 나무에 딛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답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나무를 타고 얼굴엔 진흙을 묻히며 노는 이곳은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숲 학교 풍경이다. 1950년대 북유럽 등에서 시작된 숲 학교는 자연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교육 방식이다. 영국에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주로 참여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엔 16세 학생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런던에서 숲 학교를 운영하는 엘라나 노세다 씨는 “숲 교육은 건강뿐 아니라 감정 표현과 소통 능력, 나아가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했다.나무-흙과 교감하며 ADHD 떨쳐… 英 ‘숲학교’서 삶의 지혜 배워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4〉숲, 상상력 펼치는 치유의 캔버스어린이 교육 목적으로 1994년 시작방과후 수업 형식, 英전역에 수백곳장작으로 악기 만들고 진흙 부엌도… “자연과 교감속 공동체 의식 키워” 영국 링컨셔주 링컨시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올드 우드 오가닉’ 숲. 9일(현지 시간) 찾은 이곳에서는 축구장 2개 크기만 한 약 1만2140m²에 달하는 부지 곳곳에 숲 학교 ‘랜드 앤드 리프 컬렉티브’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기구가 눈에 띄었다. 숲 학교 교사 캣 수터 씨가 나무 장작으로 만든 악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도끼로 나무 자르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뿐인데 이런 악기가 만들어질 거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했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로로 줄을 걸어 길이와 두께가 다른 장작 7개를 매달아 놓은 이 ‘천연 장작 악기’를 나무 막대기로 두드리니 마치 실로폰 소리와 같은 나무음이 울려퍼졌다. 수터 씨는 “한 학생이 장작을 패서 바구니에 던져넣다가 서로 다른 소리가 난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악기”라며 “학생의 관심을 따라갔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숲 학교 곳곳에는 ‘진흙 부엌’ ‘나뭇가지 동굴’ ‘물길’ 등 학생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놀잇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 대인기피증 떨쳐낸 숲 학교 아이들 영상 10도의 숲속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했다. 전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바닥은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졌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놀았다. 한 아이는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모닥불 위에서 빵을 굽는 데 한창이었다. 또 다른 아이는 대형 고무 타이어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균형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영국 내 첫 번째 숲 학교는 1994년 브리지워터대에 설립됐다. 교육 전공자들이 자연과의 교감, 친구 간 소통, 상상력 증대 등을 통해 어린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는 영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대학과 연계해 관할 내 숲 학교를 적극 도입했다. 현재 영국 내 숲 학교는 종류와 방식이 다양하지만 주로 방과후 수업 같은 개념으로,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보조 수업 형태가 많다. 영국에서 가장 큰 숲 학교 교사 민간단체인 숲학교협회(FSA)가 공인한 숲 교육 제공기관은 66곳이다. 등록된 교사 수만 지난해 기준 1400여 명에 달한다. 숲 학교 관계자들은 부분적으로 숲 교육을 제공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영국 전역에 숲 학교가 수백 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숲 학교에서 만난 영국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3년 전 숲 학교에 처음 온 덩컨 레이시 군(16)은 대인기피가 심해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숲 학교에 온 뒤로 달라졌다. 그는 각종 도구에 관심을 가지더니 나무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닭 횃대, 새 모이함, 의자까지. 스스로 만든 작품이 쌓일수록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은 숲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대화하고 다른 아이들을 도울 정도로 성장했다. 농부가 되겠다는 장래 희망도 생겼다. 덩컨의 어머니 멜리사 레이시 씨는 “숲 학교에서 배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곳 학생 중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국에 녹아든 숲의 ‘소프트웨어’숲 학교의 효능은 도심 지역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 런던에선 5세 이하 아이들에게 전일 야외 교육을 실시하는 숲 학교도 생기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주 5일, 풀타임으로 숲 학교 ‘포리스트 그로브 해크니’를 운영하는 리지 해세이 씨는 “아이들이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이해하길 원하는 부모가 늘고 있어 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숲 학교 ‘킨다 에듀케이션’을 운영하는 멜 해리슨 씨는 “숲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와 자연과의 재연결”이라며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출발점이 숲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산림위원회 산하 포리스트 리서치의 설문조사(2023년)에 따르면 영국인의 74%가 “최근 몇 년간 숲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51%는 “숲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늘었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22%는 지난 1년 새 숲 방문 빈도가 더 늘었다고 답했다. 영국건강보험(NHS)은 정신적, 육체적 처방의 하나로 숲 교육, 원예 등을 포함한 각종 녹색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녹색활동의 경제적 혜택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 82명이 1년 동안 의료비용을 3만8646파운드(약 6673만 원) 절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조경 원예 등 녹색산업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418억 파운드(약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된 일자리 수는 76만34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런던 20%가 공용녹지… “年1.6조 건강비용 절감”

    “동네 거리마다 모두 신비한 공동 정원을 품고 있어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1999년 영화 ‘노팅힐’에서 주인공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담장을 넘어 들어간 정원. 런던에는 이 같은 ‘도심 속 숲’인 공용 녹지 공간이 전체 도시 면적의 20%에 달한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운동하고 사교하며 휴식을 취한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일부가 된다. 런던시에 따르면 공용 녹지 덕분에 시민들이 매년 9억5000만 파운드(약 1조6406억 원)의 건강 비용을 절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체 건강에 5억8000만 파운드(약 1조16억 원), 정신 건강에 3억7000만 파운드(약 6389억 원)의 비용이 절감된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녹색 활동’도 다양하다. 런던시는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135개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400만 파운드(약 69억 원)를 지원해 테니스 코트 1250개 면적에 달하는 33ha(헥타르)에 새로운 녹지 공간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50년까지 공용 녹지 면적을 전체 면적의 50%까지 넓힌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공용 녹지 조성에 1파운드를 투자하면 런던 시민에게 27파운드(약 4만6627원) 가치의 경제적 효과가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영국에서 원예는 명실상부한 산업 분야로 자리 잡았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는 전문 및 아마추어 원예가가 3000만 명이 있다고 추산한다. 영국 인구(6697만 명)의 절반 가까이 원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교과 외 활동으로 원예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비율도 75%에 달한다. 원예·조경 산업 관련 현황을 보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중은 2019년 48조2820억 원으로, 2030년에는 71조582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에서도 원예 활동을 장려한다. 영국 요크셔주에 있는 리즈대는 캠퍼스 중심부에 ‘지속가능한 정원’을 조성해 교직원과 학생, 방문자들이 조용한 명상을 즐기며 함께 가꾸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씨앗과 식물, 농산물을 교환할 수 있는 ‘채소 도서관’도 정원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엑서터대는 식량 재배 방식을 가르치는 ‘가드닝, 웰빙과 지역사회’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영국 남서부의 재배 현장을 방문하도록 한다. 정원을 가꾸는 활동 역시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노년층을 중심으로 정원 돌봄 봉사를 하는 ‘가든 볼런티어’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HS)가 직접 운영하는 정원에서 봉사자들은 가지를 잘라내거나, 식물을 심고 기르는 모든 일을 맡아서 한다. 연간 24만 명이 방문하는 로즈모어 정원에선 봉사자들이 방문자의 안내를 돕고 있다. 로스 캐머런 셰필드대 조경건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정원을 가꾸는 가정에 대해서는 지방세, 수도요금을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지원도 고려해 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파리 센강 배 타고 이동하며 개회식… 에펠탑 앞-베르사유 궁전도 경기장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BFM TV·RM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포부를 밝혔다.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 주변에 올림픽 경기장을 마련해 ‘미(美)의 나라 프랑스’를 자랑하겠다는 취지다. 파리에서 여름 올림픽이 열리는 건 1900년과 1924년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이자 100년 만이다. 요즘 파리 곳곳의 관광 명소들은 올림픽 경기장 시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거나 리모델링해 경기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올림픽 개회식은 파리를 관통하는 센강과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앞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열린다. 근대올림픽 128년 역사상 경기장 밖에서 진행되는 최초의 개회식이다. 개회식에선 참가국 선수 1만여 명이 116척의 배에 나눠 타고 센강을 따라 이동하는 ‘수상 행진’ 장관이 연출될 예정이다. 최근 테러 위험이 커지고 있어 개회식 장소가 에펠탑 앞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한정되거나 1998년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스타드 드 프랑스로 바뀔 수도 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올려다보이는 샹드마르스 공원에선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린다. 1979년 프랑스 최초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르사유 궁전에선 승마 경기가 치러진다.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고 지금은 각종 전시회와 패션쇼 무대가 된 그랑팔레에선 태권도와 펜싱 경기가 열린다. 한국이 여자 단체전에서 올림픽 10연패에 도전하는 양궁 경기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의 묘역이 있는 앵발리드 앞 광장에서 치러진다. 올림픽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브레이킹은 콩코르드 광장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혁명 때인 1793년 루이 16세와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혁명광장’으로도 불렸던 곳이다. 마라톤 스위밍과 철인3종 수영 종목 경기는 에펠탑과 앵발리드, 샹젤리제 거리를 잇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 센강에서 진행된다. 수질 오염으로 수영이 금지된 1923년 이후 처음으로 센강에서 공식 수영 경기가 열리게 된다. 강물의 세균 농도가 유럽 기준치를 넘는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대회 개막까지 남은 기간 수질 개선에 힘써 경기를 치르겠다는 방침이다. 마라톤 풀코스 구간은 파리의 대표 관광 코스다. 파리시청인 ‘오텔 드빌’에서 시작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무대가 된 오페라 가르니에, 나폴레옹 동상이 있는 방돔 광장을 거쳐 프랑스 왕실의 화려한 역사가 담긴 베르사유 궁전을 지나 앵발리드에서 끝난다. 지하철 주요 역도 변신 중이다. 기존 개찰구를 철거하고 승차권 단말기를 따로 설치했다. 올림픽 기간 승객이 많이 몰려 통행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한 조치다. 파리에선 도심 순찰을 하는 경찰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프랑스 정부 당국은 지난해 10월 7일 중동전쟁 발발 이후 자국 내 테러 우려가 커진 데다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테러가 발생하자 국가안보 경보 체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테러를 우려해 개회식 관중 규모도 당초 60만 명에서 32만 명으로 줄였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마크롱 “테러 위협땐 올림픽 센강 개회식 포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커지는 테러 위협으로 7월 열리는 파리 올림픽 개회식을 센강 대신 국립 실내경기장에서 개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시도하려던 ‘야외 개회식’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프랑스 BFM TV 등과의 인터뷰에서 “개회식 장소가 (센강에서) 에펠탑 앞의 트로카데로 광장이나 파리 외곽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장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 기간에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며 센강 개회식에 최선을 다할 뜻을 밝히면서도 “안보 위협이 있다고 평가되면 플랜B는 물론 플랜C까지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센강 개회식을 목표로 하되,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개회식 장소를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스타디움에서 벗어나 야외인 센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주최 측은 6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개회식을 계획했지만 보안 우려와 물류 문제로 올해 초 관중 수를 30만 명가량으로 줄였다. 지난달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IS-K(호라산)’가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대형 콘서트장에서 테러를 일으킨 데다 최근 중동전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며 파리 올림픽 테러 우려도 커지고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란, 1979년 이슬람 혁명후… 이스라엘과 정치-종교 ‘앙숙’

    13일(현지 시간)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건 사상 처음이지만, 두 나라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정치·종교적으로 줄곧 앙숙 관계였다. 양측 모두 수십 년간 공격의 주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펴 왔다. 원래 양국은 관계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혁명 이전 이란 팔레비 왕조는 친미 성향으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다.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포했을 때, 이슬람 국가 중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국가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가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슬람혁명을 일으키며 두 나라는 완전히 갈라섰다. 또 다른 중동 맹주였던 이라크가 1991년 걸프전에서 패한 뒤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더욱 도드라졌다. 특히 1992년 29명이 숨진 주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 앞 폭탄 테러 등의 배후로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지목되며 관계는 더 악화됐다. 2005년 이란의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 당선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핵과학자 암살 등을 이스라엘이 주도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특파원 칼럼/조은아]佛 마크롱이 韓 신당에 훈수를 둔다면

    4·10총선을 치른 한국 정치권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주 언급된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한국의 마크롱’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득권에 사로잡힌 집권 좌파 사회당을 떠나 개혁적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창당했다. 그로부터 1년 만인 2017년, 당시 39세로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에 올랐다. 올해 39세인 이 대표도 기성 정당을 나와 당명에 개혁을 박은 신당을 꾸려 국회에 입성한 만큼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혁신당도 3월 창당한 지 한 달 만에 원내 3당에 올라 앙마르슈 초기의 열풍에 비견된다. 지금은 ‘르네상스’로 바뀐 중도성향 정당을 이끄는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연금개혁, 이민개혁, 교육개혁 등 멈추지 않는 ‘개혁 릴레이’로 저항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제3지대 신당들의 모델이 될 법하다. 게다가 투자은행 출신의 ‘엘리트’란 이미지를 극복하고 각종 경제지표를 모범적으로 개선해 이웃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마크롱 신당’의 실용-소통의 힘 중도신당을 꾸려 굵직한 성과를 낸 마크롱 대통령은 한국 신당들에 어떤 조언을 건넬 수 있을까. 첫째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실용주의를 택하라’일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 정책에선 친기업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냈지만 이민, 인권 등에선 진보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당은 물론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민심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꼈고,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정치를 원했다. 이를 위해 인사 때도 당파에 얽매이지 않는 탕평책(蕩平策)을 썼다. 제1야당인 공화당의 에두아르 필리프를 3년간 총리로 뒀고 같은 당 출신인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은 지금까지 7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직 경험이 없는 시민단체 전문가들도 두루 기용됐다.분노의 정치에 혁신 무색해지나 두 번째 조언은 ‘소통을 멈추지 말라’가 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선거 유세 때 ‘그랑 마르슈’라는 독특한 캠페인을 벌였다. 집집마다 방문해 유권자를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2030세대 젊은 지지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가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듣는 국민의 목소리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덕에 실용적 정책이 더 탄력을 받게 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긍정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할 것 같다. 2017년 그가 처음 집권하며 돌풍을 일으켰을 때 영국 BBC는 “프랑스에는 매우 비관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는데 그는 매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져왔다”고 평했다. 기성 정치인들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바빴지만 그는 프랑스인들이 어떤 기회를 갖게 될지 제시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의 신당들에 낮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 신당들에선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보단 ‘반윤’ ‘반이’ 또는 ‘반검찰’을 외치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자신이 왜 당을 나와 출마할 수밖에 없었는지 윤석열 대통령이 곱씹어 보라는 날 선 말을 남겼다. 조국혁신당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특검을 1순위로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분노의 정치로 개혁과 혁신의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테러 후원자” vs “미국같은 사탄”…이스라엘-이란은 왜 원수가 됐나

    이란이 13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을 향해 무인기(드론)과 미사일을 대거 발사해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면서 양국이 숙적이 된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거대한 사탄’인 미국에 이은 ‘작은 사탄’”이라고 부르는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에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후원자”라고 칭한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원래 사이가 원만했다. 이란 팔레비 왕조는 친미 성향으로, 미국과 가까운 이스라엘에도 우호적이었다.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포했을 때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을 정도다.하지만 이란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슬람 지도자로 꼽히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며 두 나라는 돌아섰다.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를 촉출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불법으로 점령했다고 봤고, 이스라엘과 단교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패하고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에 중동의 권력이 이란과 이스라엘로 옮겨가며 양국의 갈등은 더 첨예해졌다. 1992년 이스라엘 대사관 앞 폭탄 테러로 29명이 숨졌고,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 건물에서 발생한 테러로 85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는 더 악화했다.2005년 이란의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갈등이 더 커졌다. 선거운동 기간 ‘1979년 이란혁명의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던 그는 강력한 이슬람 사회 건설을 주장했고,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비판했다. 이란 핵 과학자 여럿이 암살됐고, 2010년 악성 컴퓨터 코드 ‘스턱스넷’이 침투해 핵 시설 원심분리기 기능이 손상됐다. 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을 때 이스라엘은 전적인 지지를 표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4
    • 좋아요
    • 코멘트
  • “한 번 꺾이면 회복 어려워”… 육아휴직 확대 등 ‘특약 처방’ [글로벌 포커스]

    《유럽도 저출산, 육아휴직 확대 등 긴급 처방유럽마저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프랑스나 영국 등도 최근 합계출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육아휴직 확대 등 긴급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회복이 쉽지 않아 위기감이 감돈다.》 “프랑스는 높은 출산율이 강점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그렇지가 않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1월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자국의 저출산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10년 연속 ‘출산율 1위’를 지켜온 나라다. 그런 프랑스마저 저출산 위기감을 표하는 게 생경하지만, 그만큼 현 상황을 허투루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67만8000명.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최저치다. 출생아 수는 2020년 정점을 찍은 뒤 3년간 20%나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2022년 1.79명에서 2023년 1.68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현지 매체들은 “프랑스는 수십 년간 출산율 붕괴를 피해 왔지만 더 이상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탄탄한 사회 인프라와 복지 제도로 저출산을 극복했단 평가를 받아 왔던 EU 국가들이 또다시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지난해 4분기(10∼12월)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추락한 한국보단 나은 처지지만, 최근 출생 통계가 예상보다 심각하자 비상이 걸렸다. 특히 프랑스는 물론 영국과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을 이끄는 주요국들의 고민이 크다. 서둘러 출산휴가, 무상보육 확대 등 ‘특약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출산율은 한 번 하락세에 들어서면 그 추세를 돌려놓는 게 쉽지 않다.● 아빠 휴직 늘리고 생후 9개월 돌봄도 유럽 국가들이 내놓는 해법은 대체로 육아를 위한 유급 휴가나 휴직을 연장하는 방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월 기자회견 당시 “출산휴가를 16주에서 6개월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경력 단절과 낮은 수당 탓에 육아휴직을 기피해 온 부모들을 위한 대책이다. 프랑스는 최대 3년 동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지만, 여성이 휴직 기간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데다 월 지원금도 428.7유로(약 63만 원)로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출산 전후 6개월간 주어지는 출산휴가가 훨씬 실효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최근 남녀 모두 난임이 급격히 증가해 많은 커플이 고통받고 있다”며 대대적인 난임 지원 정책도 예고했다. 이웃 국가인 독일에선 올해 ‘아빠 육아휴직’ 확대로 저출산과 맞서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까지는 총 14개월의 육아휴직을 부모가 나눠서 쓰도록 돼 있었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8개월 쓰면, 아빠는 나머지 6개월을 쓰는 식이다. 하지만 올해부턴 부모가 동시에 한 달간 휴직할 수 있다. 자녀가 두 명 이상이라면 동시 휴직 기간은 더 길어진다. 게다가 아빠들은 올해부터 유급 휴가 10일도 따로 받게 됐다. 해당 휴가를 써도 전체 유급 휴직 기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독일이 이런 대책을 내놓은 까닭은 프랑스처럼 출산율이 가파르게 내리막으로 미끄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인구연구소(BiB)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2021년 1.57명에서 2022년 1.46명으로 줄었다. BiB는 이러한 감소세에 대해 “출산율은 이전에도 감소 추세였지만 이렇게까지 감소 폭이 떨어진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역시 상황은 엇비슷하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2022년 1.49명으로 1939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저치다. 일간 가디언은 “최근 영국은 고물가와 주거난 등으로 ‘출산은 사치’란 인식이 만연하다”고 전했다. 영국이 선택한 해법은 무상보육 기간 확장이다. 출산 직후뿐 아니라 보육 기간 내내 국가가 아이를 돌봐주는 기간을 늘려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돕겠다는 취지다. 기존엔 3, 4세 유아를 둔 일정 소득 이하의 맞벌이 부부만 주 30시간의 무상보육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는 2세 유아를 둔 부부도 주 15시간 무상보육 서비스를 받는다. 내년 9월부턴 생후 9개월에서 취학 연령 사이의 자녀를 둔 부부도 주 30시간의 보육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관련 시설을 15% 늘리고 아이 돌보는 인력의 시급도 인상할 계획이다.● 伊, 종합 가족정책 ‘헝가리 모델’ 주목 이탈리아는 유럽에선 출산 후진국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을 정도다. 최근엔 더 심각해졌다. 합계출산율이 2022년 1.24명에서 지난해 1.20명으로 더 줄어버렸다. 출생아 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연속 감소해 2023년 34만9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최저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최근 행정부처인 가족부를 ‘가족·출생·기회평등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와 함께 육아용품 부가가치세 인하, 급여 80%에 준하는 수당이 지급되는 육아휴직 기간 연장 등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서는 더 본질적인 혁신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바로 직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해소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지난해 “이탈리아는 여성 고용률이 51%로 EU 회원국 평균(65%)에 한참 못 미친다”며 “엄마들의 고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멜로니 총리가 자주 헝가리를 “완벽한 사례”라며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헝가리는 합계출산율이 2010년 1.21명에서 2022년 1.56명으로 오히려 높아졌다. 출산율 반등의 비결로는 2010년부터 시행한 종합적인 가족 정책이 핵심으로 꼽힌다. 헝가리 정부는 진작부터 저출산의 원인이 ‘주거 및 생활비 부담’과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부모에게 육아휴직을 최대 3년 제공하고, 육아 뒤 업무에 복귀하는 여성에게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가족세 공제’ 혜택으로 3명 이상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에겐 소득세를 면제해 줬다. 헝가리 어린이집에선 아이에게 하루 네 끼 무료 식사도 제공한다. 자녀가 3명 이상인 가족에게 최대 3만3000유로(약 4860만 원)의 주택자금도 지원한다. 흥미로운 건 이탈리아가 유럽의 대표적 저출산 국가지만, 북부 트렌티노알토아디제 지역은 국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이 지역 합계출산율은 1.57명으로 전국에서 1위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일회성 아동수당을 뛰어넘는 ‘가족 친화적인 정책’으로 수십 년간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결을 소개했다. 실제로 트렌티노알토아디제 지방정부는 국가가 지급하는 아동수당 외에도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방정부는 자녀가 3명 이상인 가족에게 ‘패밀리 플러스’ 카드를 발급하며, 주민들은 이 카드로 생활용품을 2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해당 카드는 유통 프랜차이즈 ‘데스파르’와 연계돼 추가 할인도 적용된다. 대중교통은 물론 전기료나 방과 후 활동비 등을 결제할 때도 할인받을 수 있다. 인구통계학자인 아녜세 비탈리 트렌토대 부교수는 NYT에 “뻔한 일회성 정책에 혹해서 출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트렌티노알토아디제 정책이 여타 지역과 다른 점은 단발로 그치지 않고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투자를 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출산은 정말 뒤집기가 어렵다” 유럽은 한국이나 일본 등에 비하면 아직 출산율이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바짝 긴장하는 이유가 뭘까. 일각에선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재정위기 때의 트라우마가 작용했단 분석이 나온다. 그리스는 2010∼2015년 세 차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당시 연금 수급자들은 연금 지급액이 최대 50%가량 삭감되는 아픔을 겪었다. 저출산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직결된다. 이는 나라 곳간이 휑해져 국가 재정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웃 PIGS 국가들이 무너진 국가 재정에 혹독한 고통을 겪는 상황을 지켜본 그들로선 또 다른 혼란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저출산은 연금에 대한 국가적 위협이자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한 이유다. 문제는 유럽 각국이 내놓는 처방들이 아무리 획기적이어도 한 번 꺾인 저출산 흐름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재정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리스조차 출산율만은 이전만큼 회복하질 못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0일 “그리스는 저출산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며 “그리스는 출산율 하락 추세를 뒤집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리스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출산수당, 유아용품 세제 혜택, 민간 출산수당 확대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놨지만 저출산 극복엔 거의 효과가 없었다. 소피아 자하라키 그리스 사회통합·가정부 장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라도 저출산 추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방향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안나 마티시아크 폴란드 바르샤바대 부교수(노동시장 및 가족역학)도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EU “中 풍력터빈업체 보조금 조사” 발표…견제 본격화

    유럽연합(EU)이 중국 풍력터빈업체에 대한 중국 당국의 보조금 조사 방침을 깜짝 발표했다. 헐값을 무기로 유럽을 공략하는 중국산 청정에너지 제품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한 것이다. EU 보도자료에 따르면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9일(현지 시간) 미국 프린스턴대 연설에서 EU 역외보조금 규정(FSR)을 언급하며 “중국 풍력터빈 공급업체에 대한 새로운 조사에 착수한다”고 돌연 발표했다. FSR은 제3국에서 과도한 보조금을 받아 제품 단가를 낮춘 외국 기업이 EU 내에서 기업결합이나 공공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다. 베스타게르 부집행위원장은 “우리의 조사나 새로운 규제 수단은 중국의 ‘성공’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닌 경제 관계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럽과 교역은 누구나 환영하지만 그러려면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이번 조사가 최근 중국의 청정기술 관련 기업의 저가 공세를 견제하는 EU의 움직임과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하고 있다.EU는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특별 정상회의에서 중국 보조금 정책에 맞서는 지원 정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EU 27개 회원국 정상은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유럽 경쟁력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율 중인 공동성명 초안에는 “지정학적 긴장과 교역상대국의 적극적 보조금 정책으로 EU의 취약성이 노출됐다. 장기적인 생산성과 기술, 인구통계학적 추세를 고려한 긴급한 정책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10
    • 좋아요
    • 코멘트
  • 佛-獨-伊 “유럽, 이빨 드러내자”… 美-中 맞서 경제전략 공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3개국이 3자 회담을 열고 “유럽이 이빨을 드러내야 한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유럽의 첨단기술 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이 저가 덤핑 공세로 전기차 등 전 세계 시장을 흔들고, 미국이 보조금 살포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통제하려는 것에 대비해 유럽 또한 강도 높은 보호무역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중국과 미국에 이어 한국의 3위 수출국인 유럽연합(EU)이 무역장벽을 높이면 한국 수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우려된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과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 아돌포 우르소 이탈리아 산업장관은 8일 파리 인근 뫼동에서 3자 회의를 열고 ‘공동 경제전략’을 논의했다. 이들은 AI 강화, 과도한 관료주의 해소, 기업 표준의 단순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AI, 반도체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화하자고 합의했다. 르메르 장관은 특히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 전기차 등 우리의 모든 제품이 경쟁 제품보다 더 비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유럽은 이빨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보조금 지급 등으로 과잉 생산한 제품을 ‘싼 가격’을 무기로 미국, 유럽 등에 헐값으로 수출하면서 유럽산 제품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차이나 쇼크 2.0’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서방 주요국에서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장관)은 이날 파리에서 르메르 장관과 회동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 자리에서 프랑스산 브랜디에 대한 중국의 반덤핑 조사가 EU의 중국 전기차 보조금 조사에 대한 보복 성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반덤핑 조사는 특정 EU 회원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국내 업계의 신청으로 시작됐다”며 유화적으로 설득했다.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EU는 중국이 자국 전기차 업체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사실로 판명되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중국 또한 올 1월부터 프랑스산 브랜디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왕 부장은 12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중국-이탈리아 비즈니스 포럼 등에 참석한다. 그가 ‘차이나 쇼크 2.0’을 우려하는 유럽 주요국을 달래는 일종의 ‘회유 투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철중 기자 tnf@donga.com}

    • 2024-04-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글로벌 현장을 가다/조은아]“중고옷 kg당 3만 원”… ‘킬로숍’ 향하는 파리지앵들

    《패션중심 파리, ‘중고옷 쇼핑’ 열풍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6구 생제르맹 거리. 유명 문인들이 즐겨 찾던 카페 레되마고,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묘가 있는 생제르맹데프레 성당과 걸어서 5분 거리에 ‘킬로숍’이 있었다. 킬로숍은 중고 의류 여러 벌을 kg 단위로 파는 가게다. 이 매장에서 중고 옷을 쇼핑백에 한 가득 사 들고 나오던 로아 미야 씨는 “데님 스커트 한 벌을 10유로(약 1만5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옷 상태가 정말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여름 옷은 가볍기 때문에 15유로(약 2만2500원)에 네다섯 벌을 살 수 있다”며 벌써부터 여름 쇼핑을 기대했다. 옷이 몇 벌이든 무게만 따져서 팔기에 가벼운 여름 옷은 같은 가격에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기자 또한 봄 니트 두 벌, 청바지 한 벌을 20유로(약 3만 원)에 샀다. 가게에 마련된 저울에 재 보니 1kg이었다.》● 중고 옷가게, 3년간 67곳 과거에 중고 옷가게는 서민 동네에서 수수하게 운영되는 편이었다. 이제는 생제르맹 거리, 뤽상부르 공원 인근, 마레지구 등 파리의 주요 관광명소와 대로변에서 킬로숍을 흔히 볼 수 있다. 현재 파리 중심부에만 킬로숍이 열 곳 넘게 생겼다. 패션 관련 협회 ‘APUR’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고물가에 따른 시민들의 얇아진 지갑 등으로 2020∼2023년 파리의 패션 관련 상점은 621곳 폐업했다. 같은 기간 중고 의류상점은 67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킬로숍은 규모에서 커지고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날 찾은 킬로숍은 250㎡ 규모로, 3개 층으로 대형 의류매장 못지않았다. 아이 옷과 모자는 물론이고 정장, 청바지, 파티복 등 성인들이 나이에 맞게 골라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의류가 진열돼 있었다. 그래서인지 10대부터 고령층까지 고객이 다양했다. 옷마다 빨강, 초록, 파랑, 주황 원형 표시가 달려 있었다. 옷을 품질에 따라 나눈 일종의 가격표다. 빨강 표시는 여러 벌을 모아 kg당 20유로에, 초록 표시는 kg당 30유로에 파는 식이다. 옷들은 품질에 따라 kg당 20∼60유로(약 3만∼9만 원)씩에 판매되고 있었다. 유럽 곳곳에서 ‘킬로숍 장터’도 열린다. 중고 의류 판매기업 ‘비노킬로’는 프랑스 파리, 몽펠리에, 르망 등은 물론이고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에서 중고 옷 판매 이벤트를 연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티켓으로 대형 행사장에서 며칠간 열리는 장터에 가면 중고 옷을 kg당 구매할 수 있다. 옷을 행사장에 기부하면 최대 2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일부 킬로숍 매장은 ‘고급화’도 추구한다. 생제르맹 거리에 있는 킬로숍에는 한쪽에 ‘빈티지 의류’ 코너가 있었다. 고가의 양질 브랜드를 중고로 파는 장소다. 영국 명품 의류 브랜드 ‘버버리’ 전용 코너도 따로 마련됐다. 베이지색 체크무늬 버버리 재킷들이 70유로(약 10만5000원)대에 팔리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만난 70대 여성 제네나 씨는 “신제품은 600∼1000유로(약 90만∼150만 원)에 사야 하지만 이곳에서 200유로(약 30만 원)에 샀다”고 했다. 다만 일부 소비자는 이 매장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생활비 아끼고, 환경도 보호 파리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와 함께 ‘세계 4대 패션도시’로 꼽힌다. 이런 파리에서조차 중고 의류매장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지속되는 고물가가 있다. 이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에너지 및 원자재 값이 급등한 여파다. 지난해 프랑스의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에 달했다. 올 들어 상승률이 2∼3%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해와 비교해서 상승 폭만 다소 둔화됐을 뿐 상승세 자체는 여전하다. 상당수 젊은층을 중심으로 ‘옷 폐기물을 줄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중고 의류매장의 증가에 기여했다. 영국 상업폐기물 관리 기업 ‘비즈니스웨이스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섬유폐기물은 연평균 9200만 t에 이른다. 의류 제작, 폐기 관행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연간 1억3400만 t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최근 ‘올드머니룩’의 전 세계적 유행이 중고 의류 매장의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올드머니룩은 부유한 집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옷장에서 꺼낸 듯한 빈티지 패션 트렌드를 말한다. 이런 수요를 노려 아예 명품만 고급스럽게 취급하는 명품 중고매장도 생겨났다. 펜디, 구찌 등 명품 중고 제품을 취급하는 ‘레트로’는 2020년 팝업 스토어를 연 뒤 좋은 반응을 얻자 올해 상설 매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모노그램 파리’ 또한 온라인에서 성장한 후 오프라인 매장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모노그램 파리’의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사람은 24만 명을 넘는다. 이 기업은 다른 중고 매장과 달리 명품을 사고팔려는 소비자들에게 자유롭게 질문을 받고 컨설팅을 제공해 차별화했다. BFM TV방송은 “모노그램 파리 이용자들의 결제액은 평균 1000유로(약 150만 원)”라며 결제액 또한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정부, 수선비 최대 60% 지원 프랑스 당국은 옷 수선비 지원에 나섰다. 정부가 인증한 수선 집에서 옷을 수선하면 수선비의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가 기존에 전자기기 수리에 지원하던 지원금을 의류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다. ‘수선 보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정책이 지원하는 품목은 2019년 1600만 개였지만 2028년까지 2160만 개로 늘리기로 했다. 지원금은 수선비가 12유로(약 1만8000원)를 넘어야 받을 수 있다. 의류의 안감을 복잡하게 수선하면 25유로(약 3만7500원), 신발에 패드를 달 때 8유로(약 1만2000원)를 주는 식이다. 한 품목을 여러 번 수선해도 매번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옷 크기를 줄이거나 늘리는 수선은 제외된다. 또 할인 총액이 전체 수선비의 60%를 넘어설 순 없다. 정부가 수선비 지원에 나선 이유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며 옷 수선비조차 비싸졌기 때문이다. 파리의 한 수선집 앞에서 만난 시민 콜레트 씨는 “옷값을 아끼려 옷을 거의 사지 않으려 한다”며 “옷 수선에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수선은 항상 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전했다. ‘패스트패션’의 급성장으로 늘어난 의류 폐기물을 줄이려는 취지도 있다. 이에 따라 수선비 지원을 위한 재원은 섬유 기업, 신발 제조기업 등이 지불하는 환경 기부금에서 조달한다. 당국의 지원에 옷을 고쳐 입는 사람 또한 늘었다. 수리기금 지원 단체 ‘리패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약 5개월간 지급된 지원금은 230만 유로(약 35억 원)를 넘어섰다. 고급 백화점 ‘봉마르셰’ 근처에서 ‘바늘의 기술’이란 옷 수선집을 경영하는 기니 무스타가 카말 사장은 “수선 요청이 너무 많아 거절하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러 “자포리자 원전에 드론 공격… 핵테러” 우크라 “러 자작극”

    러시아가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 ‘자포리자 원전’이 우크라이나군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설 파괴 등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칫 ‘핵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7일 러시아 국영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은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원전을 드론으로 공습해 소속 직원 3명이 다쳤다”며 “원전 6호기 돔과 하역장, 구내식당 인근 등을 3차례에 걸쳐 공격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이번 공격으로 원전 주변의 방사능 수치는 바뀌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를 비난하고 나섰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서방 지도자들도 우크라이나의 핵 테러 행위를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원래 우크라이나 소유였으나 2022년 러시아가 침공해 해당 지역을 장악한 뒤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한 적이 없다”며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안드리 유소우 국방부 산하 총정보국(HUR)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우크라이나의 원전 구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이미 잘 알려진 침략군의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IAEA는 “원자력 안전에 위험이 생기진 않았으나, 원자로 격납기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심각한 핵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는 만큼 공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러시아는 전쟁 발발 뒤 지속적으로 핵 전쟁을 거론하며 위협하고 있다. 파벨 쿠즈네초프 주핀란드 러시아대사는 6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핀란드에 핵무기가 배치되면 확실히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러 “자포리자 원전에 드론 공격”…우크라 “러 자작극”

    러시아가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 ‘자포리자 원전’이 우크라이나군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설 파괴 등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칫 ‘핵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7일 러시아 국영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은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원전을 드론으로 공습해 소속 직원 3명이 다쳤다”며 “원전 6호기 돔과 하역장, 구내식당 인근 등을 3차례에 걸쳐 공격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이번 공격으로 원전 주변의 방사능 수치는 바뀌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를 비난하고 나섰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 지도자들도 우크라이나의 핵 테러 행위를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원래 우크라이나 소유였으나 2022년 러시아가 침공해 해당 지역을 장악한 뒤 관리하고 있다.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한 적이 없다”며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총정보국(HUR)의 안드리 유소우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우크라이나의 원전 구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이미 잘 알려진 침략군의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은 우려를 표명했다. IAEA는 “자포리자 원전이 공격받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원자력 안전에 위험이 생기진 않았으나, 원자로 격납기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심각한 핵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는 만큼, 공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우크라이나 자포리아주는 2022년 침공을 받은 뒤 상당 부분 러시아에 점령됐다. 원자로 6기로 구성된 자포리자 원전은 이듬해 3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전쟁 이전엔 우크라이나 국영 기업 에네르호아톰의 관리 아래 연간 약 30000GWh의 전기를 생산해왔다.한편 러시아는 전쟁 발발 뒤 지속적으로 핵 전쟁을 거론하며 위협하고 있다. 파벨 쿠즈네초프 주핀란드 러시아대사는 6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핀란드에 핵무기가 배치되면 확실히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2024-04-08
    • 좋아요
    • 코멘트
  • 벼처럼 키우고 수확하고 다시 심고 ‘숲의 선순환’

    “건강한 나무를 얻으려면 곡식을 키우는 것처럼 좋은 묘목을 길러내는 게 중요하죠.”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시 양묘장에서 만난 직원 로런 앤더슨 씨(34)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논밭처럼 평지에 펼쳐진 양묘장에는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 180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마치 벼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짜듯, 나무를 숲에 옮겨 심기 위한 ‘묘목판’이 25ha(헥타르) 넓이의 양묘장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톱날 장비가 달린 트랙터가 축구장(0.714ha) 35개에 달하는 양묘장 일대를 누볐다. 고르게 키우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묘목을 자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 심은 묘목은 반년 만에 40cm 가까이 자랐다. 양묘장에서 나온 묘목은 조림지에서 두 번째 목생(木生)을 시작한다. 조림지는 나무를 수확하기 위해 만든 숲이다. 이날 일부 묘목은 양묘장에서 4.7km 떨어진 레드우드숲으로 옮겨졌다. 이 숲은 보존해야 할 천연림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조림지가 공존하는 곳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뉴질랜드 산림 면적은 전 국토(2670만 ha)의 36% 수준인 950만 ha. 이 중에서 조림지는 180만 ha(2022년 기준)다. 뉴질랜드는 연간 목재를 4조9000억 원 가량 수출하는 등 국내총생산(GDP)의 약 5%가 숲에서 나오는 ‘임업 강국’이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SCION)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보호와 이용이라는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 심는 만큼 잘 활용해야 지속 가능한 자연이 유지된다”고 말했다.28년 주기로 나무 年 200만그루 수확… GDP 5%가 숲에서 나와 [창간 104주년]‘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3〉 ‘木맥경화’ 뚫은 뉴질랜드상품성 좋은 품종 주력으로 키워… 숲 기능 포함 안정적 목재 공급 역할조림지내 자전거길 年 60만명 찾아‘숲환생’ 벌채, 연간 5조 원대 수출… “환경-자원 넘어 안보영역으로 확장” “숲 한가운데 길게 비어 있는 공간이 ‘완전한 순환’이 이뤄지는 경계선입니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로토루아시 인근 레드우드숲 산등성이 중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집어낸 공간은 빽빽한 초록 숲 사이에 난 빈틈이다. 이곳에는 양묘장에서 키운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텅 빈 곳처럼 보이는 묘목 식재 공간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처럼 레드우드숲 곳곳에선 15년 넘게 자란 나무들로 이뤄진 조림지와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 묘목을 심은 공간이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조림지엔 1ha(헥타르)당 묘목 약 1000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평평한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약간의 흙을 쌓아 올린 뒤 심는다.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묘목이 상할 수 있어 흙을 보온재처럼 쓰는 것이다.● ‘보호와 이용’ 선순환 만드는 숲 뉴질랜드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조림지에 심은 나무는 평균 28년 키워내 상품성이 가장 좋은 시기에 수확한다. 조림지 조성 초기엔 다양한 수종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산인 라디에타 소나무가 뉴질랜드 기후와 잘 맞아 본토보다 빨리 자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엔 조림지의 91%를 채우고 있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천연림에서는 다양한 나무가 어울릴 수 있도록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조림지에는 다양한 수종보다는 상품성 좋은 품종을 주력으로 키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솔송나무가 조림지의 약 5%를 차지하는데 수확하려면 평균 40년을 키워야 한다. 조림지는 천연림처럼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숲을 활용한 각종 레저산업을 파생시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자라면서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탄소를 저장한다”며 “시간이 지나 울창해지면 이런 공익적 가치 외에도 숲을 활용한 여가 생활이나 스포츠 등 다른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우드숲은 산악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활용 가치가 높다. 조림지 사이로 자전거길 160km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국제산악자전거협회(IMBA)는 2015년 이 길을 3등급 중 가장 높은 골드 등급으로 지정했다. 협회로부터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세계에서 6곳뿐이다. 뉴질랜드 전역에 있는 자전거길은 매년 60만 명이 방문해 약 3.9일간 머물며 하루 평균 292뉴질랜드달러(약 23만 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우드숲 자전거길에서 만난 니콜 테일러 씨(32)는 “아들 네 명과 숲에 자주 온다. 광활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숲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연 살리려 나무 벤다” 환생 위한 벌채 뉴질랜드에선 숲을 키우고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적인 벌채로 선순환 고리를 이어간다. 벌채된 나무는 숲에서의 목생을 마치고 가공돼 다양한 목재로 환생한다. 레드우드숲에서 33km 떨어진 텍트 공원 주변 벌채지. 30ha에 달하는 광활한 벌판에선 최근 나무를 수확한 후 땅을 헤집어 놔 흙냄새가 가득했다. 벌채를 끝낸 민둥산 너머에는 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조림지가 있어 경계선이 뚜렷하게 갈렸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더글러스 건트 책임연구원은 “이곳은 자연을 파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살리는 공간”이라며 “나무를 벤 자리는 20년 뒤에 다시 풍성한 숲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연간 4000∼4500ha 규모의 숲을 벌채한다. 28년 주기로 벌채해 1ha당 약 500그루를 거둬들인다. 매년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내는 셈이다. 수확한 나무의 40%는 자국에서 쓰고 나머지 60%는 수출한다. 산림과학원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뉴질랜드에서 수출한 원목, 펄프, 합판 등 목재는 60억7300만 뉴질랜드달러(약 4조8937억 원)가 넘는다. 올해는 5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뉴질랜드산 목재 수입 상위 5개국은 중국 36억2400만 뉴질랜드달러(약 2조9202억 원), 호주 6억3800만 뉴질랜드달러(약 5141억 원)에 이어 한국 5억700만 뉴질랜드달러(약 4085억 원), 일본 4억7000만 뉴질랜드달러(약 3787억 원), 미국 3억8600만 뉴질랜드달러(약 3110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산림 안보에도 숲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재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목재 역시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량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트 책임연구원은 “그린스완 시대가 시작되면서 산림과 목재 사용 자립도는 환경이나 자원의 문제를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 2024-04-05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