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의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2시간10분간 엄수됐다.
장례 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광장의 야외 제단으로 운구되면서 시작됐다.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편백나무와 아연, 느릅나무 관을 겹친 3중 관을 쓰던 관례를 거부하고 하나의 목관을 쓸 것을 요구했다.
전날 케빈 패럴 궁무처장 주관 하에 봉인된 관에는 교황 재임 시기 주조된 동전이 담긴 자루, 교황 업적이 담긴 문서 ‘로기토(rogito)’가 유해와 함께 담겼다.
AP 뉴시스오전 10시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M’이 적힌 목관이 성당을 나와 제단으로 향했다. 광장의 조문객들은 박수를 치며 “바로 성인으로(Santo Subito)”라는 존경의 구호를 외쳤다.
장례미사는 추기경단 단장인 이탈리아 출신의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주례하고,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과 주교, 사제들이 공동으로 집전했다.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우리가 그에게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 우리 기억에 영원히 새겨질 모습은 지난 주일, 부활절”이라며 “심각한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우리에게 축복을 베풀었다”고 했다.
레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 속의 교황으로, 모든 이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분”라면서 “난민과 피란민을 위한 교황은 호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데 대한 그의 끈질긴 노력은 변함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의 치열한 전쟁과 그로 인한 비인간적인 참상, 수많은 죽음과 파괴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를 간청했고 이성을 호소했으며 가능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진심의 협상을 촉구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교황은 늘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으라’고 했다. 교황은 교회가 모든 사람의 집이고, 항상 문이 열려 있으며, 신앙이나 상태와 무관하게 모든 이에게 몸을 굽히고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라고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강론 뒤에는 찬송가 합창, 기도문 낭독, 성찬례가 이어졌다.
기도문은 전 세계에서 모인 조문객들을 위해 이탈리아어 외에도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등으로 낭독됐다. 교황 장례 미사에서 중국어로 기도문을 낭독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오후 7시10분께 장례 미사가 2시간10분여 만에 종료됐다. 프란치스코 교황 관은 성 베드로 대성당 경내로 다시 들어갔다가 전용 차량에 실려 안장지인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 출발했다.
바티칸에서 산타 마리아 대성전까지는 약 6km 거리다. 운구차는 티베르강을 건너 로마 시가지를 거쳐 콜로세움을 지나 산타 마리아 대성전으로 향하고 있다. 안장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AP 뉴시스바티칸에 따르면 이날 장례 미사에는 25만명이 참석했다. 바티칸은 미사 시작 시점 20만명이라고 밝혔다가 종료 후 25만명으로 추산치를 늘렸다.
130여개국이 대표단을 보내 조문을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약 50명의 국가원수와 10명의 군주가 직접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가 ‘전쟁 종식’이었던만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관련 ‘조문 외교’가 펼쳐질지에도 관심이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장례식에서 회의를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예고했다.
백악관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사 전 15분간 회동했다. 지난 2월28일 백악관에서 파국으로 끝난 정상회담 이후 2개월 만의 재회였다.
백악관은 “매우 생산적 논의를 나눴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직접 협상이 언급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 정상은 미사 이후 다시 만날 예정으로 전해졌다.
회동에는 우크라이나 지원 국가 모임인 ‘의지의 연합’을 이끄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는 귀빈석에서도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알라르 카리스 에스토니아 대통령 사이에 앉았는데, BBC는 “흥미롭게도 우크라이나의 열렬한 지원자 두 명 사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전쟁’, 우크라이나 종전 이견 등으로 각을 세워온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도 악수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최초의 접촉이다.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장례식에 직접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 참석 사실을 몰랐다며 “(바이든 전 대통령 회동은) 우선순위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장례 미사를 시작으로 오는 5월4일까지 이어지는 ‘노벤디알리’로 불리는 9일의 애도기간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매일 추모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다. 교황의 무덤은 오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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