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이후 멈춰선 시계탑, 주인 잃은 유모차 [튀르키예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0일 23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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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대지진이 도시를 휩쓴지 벌써 닷새째지만, 튀르키예 동남부 도시 아디야만 중심부의 ‘랜드마크’인 시계탑은 여전히 그날 그 시점에 머물러있다. 도심의 회전교차로 한가운데에 있는 시계탑을 촬영한 시점은 10일 오전 9시. 하지만 시계바늘은 사고가 발생했던 오전 4시 17분 이후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이곳은 한때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무너진 건물 파편으로 뒤덮혀 자동차들이 제대로 지나다니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은 아직 수습하지 못한 건물 잔해 옆으로 아슬아슬 피해 다녀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디야만 곳곳에는 벽면이 무너져내려 내부가 훤히 보이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주인을 잃은 자전거와 유모차 등이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했다. 뒤틀린 건물 앞을 지나갈 때마다 가스 냄새가 풍겨 위태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매몰자를 수색하기 위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지만, 구조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디야만을 직접 찾아 “너무 많은 건물이 손상돼 필요한 만큼 신속하게 정부가 개입할 수 없었다”라고 시인하면서도 “비상사태 하에서 가게 등을 강탈하는 사람들은 향후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이 방문하기 전, 아디야만 중심부에는 경찰들이 곤봉을 들고 다니며 문을 닫은 상점이나 빈 집을 터는 사람들이 있는지 순찰에 나섰다.



아디야만에서는 사고 닷새째 구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여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수색작업에 나선 이들은 변변한 보호장비도 없이 사실상 맨손으로 흙과 건물 파편을 들어내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따금씩 구조대는 팔을 휘저으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수색현장 100미터 밖에서 대기중인 중장비 차량들도 일제히 시동을 껐다. 사방이 고요해지면 이들은 건물 잔해 아래에 귀를 대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다렸지만 생존자를 구했다는 소식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시신만 발견됐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담요나 이불로 시신을 싸서 굴착기에 담아 아래로 내려보냈다. 



아디야만에는 정부가 제공한 텐트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영하의 추위에 집을 잃은 노부부는 10일 이곳에서 차를 끓여 마시며 간신히 몸을 녹였다. 각지에서 모아온 구호품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채 사방에 겹겹이 쌓인 모습이다. 현장에서 만난 53세 여성 율리아 악토프렉 씨는 취재기자를 바라보며 “딱 당신 또래 나이의 조카들을 비롯해서 7명이 저 건물더미 아래에 깔려있다”라며 정부를 향해 “음식은 필요없다. 구조 장비를 보내달라”라고 호소했다. 



거리는 시신으로 가득했다. 처참하게 붕괴된 건물 잔해들 옆 도로 위에 시신이 담긴 검은색 봉투가 몇 개씩 놓여있었고, 그 옆에서 주민들은 서로를 부여안고 위로하거나 작은 모닥불에 의지해 몸을 녹이며 구조소식을 기다렸다. 그나마도 남는 이불로 아무렇게나 덮은 시신들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민들은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발견된 시신”이라며 내일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수거해 소각할 예정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아디야만=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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