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감시-세상 단절…‘살인기계’가 된 미얀마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9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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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군부와 민주화 시위대가 충돌하고 있는 미얀마 사태가 끔찍한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의 날’이었던 27일(현지 시간)에는 하루 동안 5세 아이 등 시민 114명이 군경의 유혈진압에 숨졌다. 미얀마 현지 언론은 지난달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이달 28일까지 민간인 누적 사망자가 459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했다.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리낌 없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며 유혈진압을 하는 군부에 대한 분노와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아무리 상부의 지시라고 하지만 같은 국민, 같은 이웃을 무참히 살해하는 이들의 행동은 제3자의 시선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현직 미얀마 군부 인사의 증언을 통해 그 이유를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텟마도(Tatmadaw)’로 불리는 미얀마 군은 내부적으로 철저한 사상 교육과 감시 체계로 군인들을 길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군부에 속하게 되면 시민들과는 단절된 채 살아가고 군부가 부여한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살인 명령’ 등 상부의 지시에 충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의 결혼까지도 군부가 통제하고 있다.

툰 묫 아웅(Tun Myat Aung) 전 대위는 현재 유혈진압으로 악명이 높은 77경보병사단의 대장이었다. 그는 지난달 군을 이탈해 현재 모처에 은둔 중이다. 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들이 양곤에서 군에게 살해됐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이후 몰래 군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군인들을 향해 “나는 군을 매우 사랑하지만, 만약 너희들이 국가(국민)와 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국가를 택하라”고 호소했다.



약 50만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얀마 군은 외신에 종종 ‘살인을 위해 길러진 로봇 병사’로 묘사된다. 군 관련자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군은 약 60년간 철저한 내부 교육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일단 군에 들어가면 ‘우리는 국가와 종교의 수호자’라는 사상을 끊임없이 주입 받는다.

미얀마 군은 시민과도 단절된 채 살아간다. NYT는 군과 ‘그 나머지’ 계층은 일터, 사회적으로도 완전히 분리된다고 전했다. 군은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고 이러한 이유로 시민 위에 군이 군림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내부 감시체계도 살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에서 상급자는 하급자의 오프라인, 온라인 등 모든 사생활을 감시한다. 대부분 군 인사들과 그 가족들은 군 주거단지에 거주해야 한다. 지난달 1일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는 군부의 허가 없이는 15분 이상 이 주거단지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이 군인들의 증언이다. 한 탈영 장교는 ‘현대판 노예’라고 말했다. 다른 현역 군의관은 “군을 그만 두고 싶지만 그러면 감옥에 가게 될 것이 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탈영이라도 하면 군부는 우리 가족들을 잡아다 고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부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가족들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군에 남아있는 군인들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군은 군인들의 결혼도 통제하고 있다. 군에서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미혼의 군인과 결혼하는 것이 매우 흔하고 평범한 일이라고 NYT는 전했다. 이 경우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자신의 새 남편이 될 사람을 선택할 권리가 거의 없고, 군부가 정해주는 인사와 결혼을 해야만 한다. 아웅 전 대위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세상과 단절됐고, 군은 그들의 전부”라고 말했다.

현재 시위 진압에 투입된 군인들에게는 “도시 곳곳, 거리와 골목 곳곳에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선전 선동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군인의 세계관 때문에 대부분의 군인들이 민간인 살해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아웅 전 대위는 “누군가 군에 불복종하면 범죄자로 본다”며 “대부분의 군인들은 평생 민주주의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상 교육과 선전 선동은 군 지도부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7일 미얀마 군의 날 기념식에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말했다. 유혈진압을 일삼고 있는 군이 마치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이 들리는 대목이다.

군부의 교육에 익숙해진 군인들은 흘라잉 사령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흘라잉 사령관이 발언한 이날 미얀마 군은 쿠데타 이후 최악의 대학살을 일으켰다. 미얀마 군부는 27일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114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도시에 배치된 한 군인은 “현재 미얀마군은 외국의 개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시민사회는 미국과 서방세계, 유엔 등이 이번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 제재나 군부 관련 인사들의 입국 금지 등에 머물고 있다.



현재 미얀마는 주요 인터넷 연결망이 끊긴 상태다. 여기에는 군부의 내부 통제 목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군인들은 쿠데타 발발 이후 군을 떠났다. 몇몇 군인들은 온라인에 익명으로 “나는 군에 속해있다. 시민들은 포기하지 말아달라”, “결국 진실이 이긴다” 등의 글을 올리며 시민들과 연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군이 이 같은 상황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은 1948년 독립 이후 각종 전쟁을 통해 입지를 굳혀 왔다. 군은 게릴라군, 반란군, 정글에 은신한 지역 군 세력 등과 싸웠다.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 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군은 여전히 장관 일부 임명권, 국회의원 일부 임명권, 각종 국유 사업 등의 이권을 놓지 않았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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