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현황과 정부의 대응 방향을 알리기 위해 진행되는 백악관 브리핑이 점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원맨쇼’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해고설과 함께 수면 위로 불거진 내부 갈등과 초기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가열된 13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는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홍보영상까지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되고 있다. 이는 훌륭한 전문가들 덕분”이라며 파우치 소장을 연단 위에 서게 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 자리에서 ‘더 일찍 발병완화 조치를 했더라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CNN방송 인터뷰 발언에 대해 “가정적인 질문은 때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한다”며 “단어 선택이 서툴렀다”고 해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해명을 지시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자발적인 것”이라며 내부 갈등설을 공식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파우치 소장에 대해 “훌륭한 사람이며 그를 좋아한다. 해고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트위터에서 ‘Time to #FireFauci(파우치를 해고할 때)’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글을 리트윗해 논란을 키웠다. 파우치 소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대응을 지적하고, 경제활동의 조기 정상화 요구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는 등 잇따라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더 이상 놔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해고를 언급한 트위터를 리트윗한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내용을 다 알고 있지만 그저 리트윗했을 뿐”이라며 “그저 누군가의 의견이었다”고 반박했다. “모두가 앤서니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논쟁은 좋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이날 중국발 입국자 차단 등 자신이 취했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구체적인 날짜를 명시해가며 자화자찬성 발언을 이어갔다. “나는 언론에 의해 인종차별주의자에 외국인 혐오자라고 비난받았고, 가짜뉴스에 의해 야만인 취급을 당했다(brutalized)”며 억울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어서 브리핑룸 양쪽의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 5분 가량의 동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발 입국 차단,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주요 발표 영상이 배경음악과 함께 차례로 담겼다. 또 주요 주지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하는 브리핑과 인터뷰 영상이 차례로 소개됐다. 선거 캠페인을 방불케 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런 것을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 팀이 이 영상을 만드는 데 2시간도 안 걸렸다”며 “이런 동영상 클립을 수백 개라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해냈고 우리가 한 모든 것은 옳았다”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등의 발언도 쏟아냈다. 정적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공격하는가 하면 비판적 질문을 하는 기자들과는 신경질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이날 브리핑을 놓고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고삐풀린 듯 불만을 쏟아낸 브리핑에서 대응 실패를 감추고 역사를 다시 쓰려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브리핑이 끝나기도 전에 성명을 내고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을 선전하고, 그의 대응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브리핑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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