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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中눈치 WHO 사무총장 물러나라” 인터넷 서명 32만명 넘어

입력 2020-02-08 03:00업데이트 2020-02-08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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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신종코로나 늑장대응 비난 봇물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의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중국 눈치 보기로 일관하는 세계보건기구(WHO)에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심에 2017년 7월부터 WHO를 이끌고 있는 동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55)이 있다.

1948년 WHO 설립 후 첫 아프리카 출신, 첫 비(非)의사 출신 수장인 그는 중국의 전폭적 지지로 ‘세계의 보건대통령’이 됐다. 당선인 시절부터 ‘하나의 중국’을 지지했고, 신종 코로나 사태가 불거진 뒤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중국의 조처에 국제사회가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한다”는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에 본부를 둔 청원 전문 웹사이트 ‘체인지닷오아르지(change.org)’에는 지난달 23일부터 ‘거브러여수스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7일 기준 32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강대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개발도상국 인물이 국제기구 수장에 올랐을 때 어떤 후폭풍을 야기하는지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 中 지원으로 WHO 수장 올라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1965년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에서 태어났다. 당시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 영토였고 1993년 독립했다. 대학 졸업 후 영국 유학을 떠난 그는 면역학과 지역사회보건학으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에티오피아 보건장관, 외교장관 등을 지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2017년 5월 사무총장 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그는 영국 감염병 전문의인 데이비드 나바로 전 WHO 에볼라 특사와 2파전을 벌였다. 유럽은 나바로, 아프리카는 거브러여수스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래리 고스틴 미 조지타운대 교수가 “거브러여수스가 보건장관 시절 자국 내 3건의 콜레라 전염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위기를 맞았다.

이때 중국이 나섰다. 에티오피아는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거점이다. ‘아프리카 속 중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에 친화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국 국책은행들이 에티오피아에 투자한 돈만 121억 달러(약 14조 원). 중국은 2016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이웃 나라 지부티를 잇는 약 750km 철도 건설에도 약 40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부티에는 중국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가 있다. 인구 1억 명의 에티오피아와 지부티를 연결해 아프리카 전체를 접수할 발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이 워낙 거액을 투자하다 보니 국가 전체가 ‘차이나머니’에 좌지우지되기 쉬운 구조다.

중국은 친중 인사 거브러여수스의 당선을 위해 “WHO에 향후 600억 위안(약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며 통 큰 지원을 약속했다. ‘보건 실크로드 건설’이란 거창한 목표도 내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194개 회원국 중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국들을 집중 공략했다. 거브러여수스는 133표를 얻어 손쉽게 당선됐다.

그는 당선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국제 보건기구 수장으로는 이례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언급했다. 2017∼2019년 연례총회에 대만을 초청하지 않았고 대만 언론의 취재도 거부했다. 대만 정부는 “신종 코로나 발생 이후에도 WHO와 중국이 대만을 노골적으로 홀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제한적 정보만 제공하고, 대만이 WHO의 각종 회의에 참여하는 것도 막아왔다는 뜻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을 때 한쪽 다리를 살짝 굽히고 인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칙사가 황제를 알현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 美 국제기구 냉대로 中 의존 커져


전문가들은 사실상 회원국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WHO 재정 구조, 다자 기구를 불신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성향 등을 감안할 때 WHO의 중국 편향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WHO 운영자금은 본부가 각 회원국에 배정한 일종의 분담금과 회원국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WHO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6∼2017년 분담금 총액은 9억2700만 달러, 기부금은 4배 이상 많은 41억1600만 달러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10조 원 투자를 약속한 것은 WHO의 중국 의존도를 더 높일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유엔인권이사회(UNHRC) 등 유엔 산하기구에서 탈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방만한 유엔 예산의 22%를 부담한다.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며 6억400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지원금도 삭감했다. 현재 15개 유엔 산하 국제기구 중 중국인 수장을 둔 곳은 식량농업기구(FA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 4개다. 미국인 수장은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 단 1명뿐이다.

WHO 자체의 신뢰 위기도 상당하다. WHO는 에볼라 때에도 발병 후 9개월이 흐른 2014년 8월에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에서 1000명 이상이 숨진 뒤였다. 이번에는 지난달 30일 뒤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여행과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모순된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여행 및 교역 제한 없는 비상사태 선포는 실효성이 없어서 ‘팥소 없는 찐빵’이란 지적이 나온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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