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탠퍼드大 윌리엄 바넷 교수 방한 인터뷰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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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바넷 교수는 “기업은 경쟁을 무작정 피하지 말고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동적 경쟁(Dynamic Competition)’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방한했다. 박영대 기자
윌리엄 바넷 교수는 “기업은 경쟁을 무작정 피하지 말고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동적 경쟁(Dynamic Competition)’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방한했다. 박영대 기자
어렸을 적 한 번쯤은 읽어본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女王)’이 나온다.

그녀는 힘껏 달려도 늘 제자리에 머문다. 주변 경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바넷 교수는 기업이 속한 환경도 ‘붉은 여왕’의 세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환경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며 기업들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바넷 교수는 1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업은 경쟁을 피할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기업인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동적 경쟁(Dynamic Competition)’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 기업이 좋은 성과를 내면 경쟁하는 기업에 더 많은 압력을 주게 된다.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도 역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기업은 선(善)순환하며 발전한다.”

바넷 교수는 현대자동차가 1999년 미국 시장에서 주행거리 10만 마일까지 무상 수리해 주는 파격적인 전략으로 치고 나갔을 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현대차를 이기기 위해 새로운 능력을 키워야 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당신의 이론이 기존 전략 이론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존 이론은 시장을 평형 상태로 가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 환경은 계속 변화하면서 기업에 기회를 만들어 준다.”

―장기적으로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기업 생태계에선 적자생존의 법칙이 반드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기업이 아니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정부의 보호로 유지되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바넷 교수는 “조직 내부의 관리자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은 자신이 처한 환경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며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 한국에선 경쟁 없는 시장을 찾으라는 ‘블루 오션’ 이론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성장하라는 이론과 상반되는 것 같은데….

“파란색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 하는 게 문제다. 블루 오션은 처음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경쟁기업이 뛰어들면 피 흘리는 경쟁을 벌이는 레드 오션으로 금세 변하게 된다. 경쟁이 없는 시장을 찾으라는 것은 ‘연금술’처럼 말은 그럴듯해도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바넷 교수는 150개 기업의 40년간 실적을 살펴본 결과 경쟁을 견뎌 낸 기업이 지리적 이점 등을 통해 경쟁을 회피한 기업보다 생존율이 높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경쟁에서 빠져나오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진화를 통한 학습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에 혁신이 이뤄지기 어렵다. 예컨대 국내 시장에서 경쟁을 겪지 않은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바넷 교수는 1988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1년부터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전략과 조직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1996년 ‘붉은 여왕’ 이론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붉은 여왕(Red Queen) 이론:

모든 생명체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환경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진보가 둔화된다는 진화생물학의 이론. 윌리엄 바넷 교수는 이를 경영학에 도입해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고 발전시켰다.

:블루 오션(Blue Ocean) 전략:

기업은 경쟁 기업과 피투성이로 싸우지 말고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경영 전략. 프랑스 경영대학원(인시아드)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제시했고, 최근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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