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다. 올 3월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새 친구를 사귀었다며 한 말이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이 한창이던 봄, 새 학교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은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파랑 빨강 편 나누기부터 시작했다. 탄핵과 대선을 거치며 중1 아이들은 “보수는 내란당이래” “진보는 검찰 없앤대”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거친 정치 구호가 아이들의 일상어가 됐다.
등하굣길에서 마주치는 정쟁 현수막 문구는 아이들이 장난처럼 소비하는 밈이 됐다. 마음에 안 드는 반장에게 “탄핵해 버린다”고 농담하는 게 요즘 교실 풍경이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보수, 진보는 본래 뜻과 상관없이 편을 갈라 싸우는 깃발 표식으로 전락했다.
두 쪽으로 나뉜 교실과 교무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교무실도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 성향으로 갈라져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 수원시 한 중학교에서는 어떤 교사가 스마트폰으로 편향성 강한 시사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동료와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주는 25만 원을 어디 쓸지 고민이다”라며 싱글벙글하던 교사에게 “그거 다 우리 세금인데 뭐가 그리 즐겁냐”며 다른 교사가 공개적 면박을 준 일도 있었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울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는 교사의 정치 활동 자유 보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당 가입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민주 시민의 권리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사회와 정치 문화 수준을 볼 때, 학교 현장이 정치 자유의 책임과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혐오와 진영 갈등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교사에게 제한 없는 정치 자유를 전면 허용한다면 학교는 가장 치열한 정치의 전쟁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원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한 결과,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판하는 글을 쓸 수 있게 하고, 교사 커뮤니티나 단체 대화방에서 정치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디어에서 정부 정책에 대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집회 시위에서 자신이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정당·정치인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50만 명에 달하는 전국 교사의 절대다수는 건전한 상식과 양식을 갖춘 분들이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극단적 소수가 전체 분위기를 뒤흔든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일부 교사가 방송이나 SNS에서 특정 진영의 나팔수처럼 행동한다면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부모 항의에 “정치적 탄압을 받는다”며 순교자 행세를 할 수도 있다. 극성 지지자들이 달려들면 학교는 정치의 최전선으로 내몰린다.
단순한 정치적 편 가르기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자칫 공교육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가 정치판에 휘말린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가뜩이나 흔들리는 공교육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질 게 자명하다. 교사가 흔들리면 공교육 신뢰 추락한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다. 사회 규범과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판단 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인생의 방향을 좌우할 사표(師表)다. 교원의 정치적 자유는 보장해야 하지만, 그 자유는 학생과 사회가 편향된 가치로 흐르지 않도록 절제와 균형을 갖춰야 한다. 교실은 한국 사회 품격과 책임을 배우는 마지막 보루다. 두 쪽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가 교원의 제한 없는 정치 활동 허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칫 학교가 정치의 전장으로 전락한다면, 민주주의도 공교육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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