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지배하는 자가 세계 지배…정상 올랐을 때 변신 모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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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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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록으로 본 호암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현 최고경영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긴 머리에 양복을 입은 젊은 잡스의 모습이 이채롭다. 호암은 잡스에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 제공 삼성그룹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 현 최고경영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긴 머리에 양복을 입은 젊은 잡스의 모습이 이채롭다. 호암은 잡스에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 제공 삼성그룹
고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다. 1936년 호암이 26세에 시작한 정미와 운수사업은 처음엔 번창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토지에 투자도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중일전쟁으로 대출이 중단됐고 땅값이 폭락했다. 이후 호암은 △시대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욕심을 억제하고 자신의 능력과 그 한계를 지켜야 하며 △우연한 행운을 잡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고 △직관력을 연마하는 동시에 미리 대책을 마련하고 대세가 기울면 과감하게 청산하고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좌우명을 갖게 된다. 경영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호암이 실패를 바탕으로 ‘시대 상황의 통찰과 자기 진단’이라는 기업경영의 핵심을 스스로 체득한 셈이다. 호암 탄생 100주년인 12일을 맞아 호암의 경영철학을 그가 남긴 말들에서 되새겨 봤다.

“사람이 기업을 하는 동기 중에는 금전욕을 뛰어넘는 창조적 충동이라고 할까, 무엇이든지 값어치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앞장서서 만들어 내고자 하는 본능과 이에 따르려는 의욕이 있는데 우리는 흔히 이것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 정신이란 바로 이러한 본능과 사회적 책임감이 잘 화합되어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1980년 2월 2일 간담회에서)

1953년에 세운 제일제당으로 호암은 이미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호암은 이듬해 곧바로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한국은 할 수 없다”는 미국 업자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수입을 대체할 생필품인 모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집념으로 6개월 만에 국제 수준의 최신 공장을 건설했다. “나는 사업을 통해서 ‘기업은 사람’이라는 원리를 잠시도 잊지 않고 실천해왔다. 국가의 발전이 탁월한 정치가에게 달렸다면 기업의 발전은 유능한 경영자에게 달려 있다. 삼성이 발전한 것도 결국 남보다 유능한 인재를 많이 기용한 결과라고 하겠다.”(1980년 7월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연에서) 호암은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보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고 했을 정도로 인재제일주의 신념을 지켰다. 호암의 경영철학은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12층에서 신세계갤러리가 16일까지 여는 ‘묵향(墨香)에 담긴 호암의 정신’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호암의 서예작품 31점과 유품, 사진 등을 모은 이 전시는 신세계 본점에 이어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18∼23일), 신세계 광주점(3월 2∼8일) 등으로 이어지며 열린다.

한편 전경련, 한국경영학회, 삼성경제연구소는 호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국경제 성장과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했다. 프랑스 소르본대의 도미니크 바흐조 교수 등은 주제발표를 통해 호암의 경영은 신유교주의가 밑바탕이 된 독창적인 경영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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