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선물거래소 본사이전 ‘두 집 살림’에 지친 1년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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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선물거래소가 본사를 옮긴 뒤 부산 경제에 도움을 준 게 뭐 있습니까. 요즘 거래소 직원들은 밥도 밖에서 잘 안 먹어요.” 지난달 28일 부산 중구 중앙동 증권선물거래소 앞 음식점 주인은 볼멘소리를 했다. 2003년 12월 개정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은 증권선물거래소 본사를 부산에 두도록 규정했다.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등 3개 기관이 올해 1월 증권선물거래소로 통합 출범하면서 ‘부산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하지만 거래소가 본사를 부산으로 옮긴 이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시 유의해야 할 사례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성. ‘공식 본사’는 부산이지만 ‘사실상 본사’는 서울인 기형적 형태 때문에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

소속 부서는 부산에 있지만 실제 근무지가 서울인 거래소 홍보부장은 매주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간다. 반대로 근무지가 부산인 선물시장본부 직원들은 신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홍보를 위해 서울을 찾는다.

부산 본사 살림을 맡고 있는 경영지원본부 직원들의 서울 출장도 잦다. 거래소가 주관하는 행사는 대부분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

이사회가 열릴 때는 기획 관련 부서 직원들이 상경한다. 이사 15명(사외이사 포함)이 대부분 서울에 거주해 이사회는 서울에서 열린다.

직원 가족들도 불편을 겪고 있다. 올해 초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하반기에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난 직원은 1년 만에 이사를 두 차례 했다. 자녀들도 두 번 전학했다.

올해 초 부산에서 열린 사내 체육대회 때는 서울 직원 300여 명이 부산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이영탁(李永鐸) 거래소 이사장은 매주 한두 차례 서울∼부산을 오간다. 매주 평균 1.5차례 움직인다고 볼 때 그가 이동하는 거리는 연간 6만 km를 넘는다. 주로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이사장이 서울∼부산을 오가는 데 연간 450시간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거래소는 3월 한국철도공사와 할인계약을 하면서 ‘고속철을 연 2000회 이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2000회면 거리로 80만 km, 오가는 데만 약 8000시간이 허비되는 셈.

거래소 관계자는 “직원 출장이 워낙 잦아 2000회는 거뜬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과의 갈등이다.

거래소는 본사를 부산으로 옮긴 뒤 지역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래소의 전신인 부산 선물거래소 시절에는 부산 시민단체가 거래소 간부들의 부산 본사 상주시간을 체크하기도 했다.

지금도 거래소와 부산시는 새 사옥을 언제 어디에다 짓느냐, 부산에 선물연구원을 설립하느냐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거래소가 완전히 부산으로 옮기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서울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상장회사 대부분과 거래소 주주이자 고객인 증권사 대부분이 서울에 있기 때문. 따라서 거래소가 언제 확실하게 부산에 뿌리를 내릴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현재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회사는 CJ투자증권 럭키생명 부산은행 등 10개가 안 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증권선물거래소가 겪고 있는 비효율과 갈등은 다른 공공기관 이전 때도 그대로 나타날 근본적인 문제”라며 “다른 기관도 계획을 철저히 세우지 않으면 공공기관 이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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