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의 조건, 質보다 값?…인터넷 서점 할인경쟁

  • 입력 2005년 9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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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책의 내용이 좋아야 하고 표지 등 책 모양도 잘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최근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이런 기본 조건 외에도 “책값을 정가보다 많이 할인해 줘야 한다”는 새로운 조건이 생겨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인터넷 서점들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책들은 거의 다 정가의 70% 판매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정가의 50% 수준도 적지 않다.

심지어 정가의 28%에 살 수 있는 책도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베스트셀러를 사상 전례 없이 싼값에 살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불붙은 할인경쟁=할인경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7월 1일부터 소액 상품의 경품 규모를 3000원에서 5000원으로 늘릴 수 있게 허용하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앞장서서 8월부터 인터넷 서점들 간의 ‘가격 비교제’를 시작한 데서 본격화됐다.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들은 기존의 책값 할인과 적립금 혜택 외에 각종 현금 쿠폰 제공, 제휴사와 함께하는 추가 할인 혜택 등을 주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대부분 일반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의 판매량을 합산한 한국출판인회의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2주째 1위인 ‘모모’는 인터넷 서점들에서 정가의 65%에 살 수 있다. 3위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55%, 5위인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60%, 9위인 ‘연금술사’는 62%에 팔린다.

200만 부를 넘긴 ‘다빈치 코드’는 500원짜리 쿠폰을 합쳐 정가의 52%에 팔린다. 인터넷 교보문고의 철학심리교육 분야 베스트셀러 3위인 ‘유혹의 심리학’은 적립금과 쿠폰을 포함해 정가 1만2000원의 28%인 3330원으로까지 구입가를 낮출 수 있다. ‘오 자히르’는 한때 정가의 30%에 살 수 있었다.

상당수의 책들이 5∼20%의 할인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은 대부분 30% 이상의 할인을 해 주고 있다. 높은 할인율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최근의 할인 경쟁에 따라 ‘출간 1년이 안 된 책의 경우 인터넷 서점들이 정가의 10% 내에서 책값을 낮출 수 있다’고 규정한 ‘도서정가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 서점들이 제공하는 적립금과 쿠폰 등이 몇몇 조건을 달고 있는 경우가 있어 ‘경품류 제공에 관한 불공정 거래’에 직접 해당하는지는 애매한 상태다.

▽엇갈리는 출판계의 반응=한 출판사 사장은 “인터넷 초기 화면에 눈에 띄게 책을 소개하려면 다른 출판사보다 더 큰 할인 폭에 쿠폰까지 줘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이 인터넷 서점들로부터 들어온다”며 “중소형 출판사는 큰 부담을 안고 모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출판사 사장은 “초기엔 할인 부담이 크지만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면 인터넷 서점이 할인 부담을 떠안은 채 책을 가져가 결과적으론 플러스”라고 말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최근 할인 경쟁에는 불법적인 면이 있다. 결국 자금력이 있는 큰 출판사들이 펴내는 정보 오락 위주의 베스트셀러들이 독자들을 과다하게 빨아들일 것이다. 인문서들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동네 서점’들의 폐점도 빨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김인호 기획이사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해 인터넷 서점의 매출액은 전체 서점의 총매출액 가운데 15∼20%였다. 인터넷 서점의 비중이 커질수록 출판사들은 할인 폭을 미리 감안해 책값을 높이게 된다. 결국 독자들에게 가는 이익은 없다. 인문서의 경우 책값을 사실상 한 단계 올렸다. 독자들이 주로 인터넷 서점에서 사기 때문이다. 점점 독자들은 할인된 책들을 쫓아다니는 경향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은 입장이 다르다.

“현재의 갖가지 할인 혜택은 법적인 검토를 끝냈으며 불법이 없다. 베스트셀러 때문에 인문서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터넷 서점들은 (출판사에 압력을 넣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윤 폭을 줄여서 할인 경쟁을 한다. 어떤 책들의 경우 손해도 본다. 결국 할인 경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독자들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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