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재래시장 죽는다… 할인점 막아라”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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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소송을 당하면 질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알면서도 구청장 지침으로 대형점포(할인점)를 인구 15만 명에 1개꼴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재래시장이나 구멍가게들이 초토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대구 남구청 공무원)

“명문화된 것은 없지만 대형유통업체가 점포 개설을 신청하면 반드시 주변 상인과 합의를 해 오라고 요구합니다.”(경북 경산시 공무원)

할인점을 포함한 대형 점포의 지방 진출을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는 규제완화 차원에서 대형점포의 지방 진출 조건을 완화하는 추세여서 대형점포 진출을 막으려는 지자체의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시대적 대세도 부담이다. 그런데도 일부 지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부 지침까지 만들어 대형점포의 지방 진출을 저지하려 한다.

○ 대형 점포 진출을 막아라

대구 남구청은 올해 4월 대형점포 진출을 막기 위해 내부지침을 만들었다. 건축심의나 교통영향평가 통과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사실상 인구 19만 명인 남구에 대형점포가 1개만 들어오도록 한 것.

대구 남구청 지역경제과 이재봉 계장은 “현재 1개뿐인 대형점포가 2개만 되더라도 재래시장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지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전이나 충북 청주시도 사실상 대형점포의 추가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지자체일수록 대형점포에 대한 반발은 더욱 심하다.

그러나 이런 지침은 특정 업태의 특정면적 이상 점포에 대해서만 건축을 차별하는 것이어서 대형점포가 소송을 제기하면 지자체가 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유통업계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용도가 정해진 땅에 대해 지자체가 임의로 건축을 제한하면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권이 중대하게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 지자체의 고민

정부 추산에 따르면 대형점포(매장면적 3000㎡ 이상) 1개의 연평균 매출액은 768억 원, 재래시장(1000㎡ 이내 50개 이상 점포)의 평균 매출액은 110억 원이다. 이론적으로 대형점포 1개가 6∼7개 재래시장의 매출액을 흡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자체들은 지역경제를 굴려야 할 돈이 대형 유통업체의 본사가 있는 서울이나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시장 상인들이 벌어들인 돈은 다시 지역에서 소비되지만 대형유통업체가 번 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문제는 지역 주민의 편익을 생각하면 대형점포 진입을 무조건 막을 수만도 없다는 점. 한 곳에서 편리하게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가격도 싸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런 점을 공략해 지방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점포의 일부 공간에 문화센터 같은 곳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문화 욕구도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지자체를 설득하는 것.

○ 대안은 없나

지방 중소상인과 대형점포가 공존 방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산업연구원 백인수 연구원은 “대형 할인점이 창출하는 유동인구를 활용한 지역상권 살리기에 지자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상권 개발 전문가를 발굴해 겹치지 않는 업종으로 할인점 주변 기존 상가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변명식 장안대 교수는 “대형점포도 올해 말이면 300개에 이르러 거의 포화상태가 된다”며 “점포가 크다고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중소 점포의 개성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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