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한국경제 日 닮아가나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37분


99년3월 일본 정부는 15세 미만과 65세 이상에게 1인당 3만엔씩의 상품권(지역진흥권)을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기를 소비확대로 활성화시켜 보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기대한만큼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던 것.

당시 일본에서는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가 연0.272% 수준이었다.

▼글 싣는 순서▼
① 마이너스 금리의 사회상
② 고금리시대, 영영 끝났나?
③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일본의 교훈
④ 부동산투자, 과연 대안인가?
⑤ 금융상품 틈새찾기

금리가 떨어지자 일본인들은 노후를 대비해 되레 한푼이라도 더 저축하려 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금리가 낮으니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몰렸던 것. 상품권을 준다고 해서 소비를 늘릴 처지가 못됐다.

일본의 1년만기 수퍼정기예금 금리는 현재 연0.05%. 100만엔(약1070만원)을 맡기면 1년이자가 5000엔에 불과하다. 이자소득세(이자소득의 20%)를 떼고 나면 4000엔. 1달에 333엔 꼴이다. 이는 택시 기본요금(660엔)에도 못미치는 돈.

▽일본의 초저금리는 장기불황의 원인〓경제학 교과서는 금리인하를 경기부양대책의 하나로 가르치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늘어나 경기가 활성화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전체소득도 증가한다는 것.

그러나 일본은 정반대다. 금리를 내릴수록 저축이 늘어나는 반면 기업투자는 꿈쩍도 않는다. “작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1.0%인 등 물가가 떨어지고 있어 그래도 예금하는 쪽이 소비하는 것보다는 유리”(다이와SB증권 이케다(池田) 서울지점 부지점장)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저금리가 경제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

삼성경제연구소 최희갑 수석연구원은 “일본이 90년대들어 금융 기업의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 대책을 반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도 일본을 닮아가나〓올들어 금리가 바닥을 기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는 잠잠하다. 금리가 큰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던 작년 하반기부터 내구재 소비는 급격히 감소해 경기가 급격히 식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은 최근의 금리하락이 당장 투자를 부추기는 효과는 별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비용이 줄어 수익성을 개선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국내외 경제여건 등을 감안할 때 금리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것.

전경련 금융조세팀 손경숙 과장은 “국내 경기가 당분간 살아날 기미가 안보이는데다 석유화학 등 상당수 업종의 설비과잉이 여전한 상태여서 금리하락이 대규모 설비투자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금리하락→개인 이자소득 감소→소비위축→매출부진’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할 경우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LG화학 관계자는 “부채비율 200% 제한이 있는한 금리가 떨어져도 추가차입을 통한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금리하락으로 기업의 금융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긍정적 요소다. 은행의 평균 기업대출금리가 98년 연 10.96%에서 올 2월 8.05%로 떨어졌다.

삼성 LG SK 등 우량 그룹 계열사들은 6%대의 회사채를 새로 발행해 외환위기 직후 연 17∼18%의 고금리로 조달했던 회사채를 교체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도가 떨어지는 비우량 기업은 여전히 비싼 금리를 내야 하는 실정. 게다가 금융비용이 줄어들면서 한계기업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형 저금리경제를 만들어야〓미국은 80년대 불황을 겪으면서도 단기적인 경기대책보다는 구조조정에 치중했다. 리스트럭처링과 M&A(기업인수합병) 및 저축대출조합(S&L)의 무더기 퇴출등을 통해 부실요인을 과감히 도려냈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뒤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저금리→소비·투자확대→고성장 저물가의 기적을 이뤄냈다. ‘신경제’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10년이상의 장기호황을 누렸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연구위원은 “과다한 저금리는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임으로써 일본과 비슷한 장기불황에 빠지는 것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굿모닝투자신탁운용 강창희 상임고문도 “저금리는 금리가 떨어짐에 따라 시중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해 주가가 상승하고 그 결과 기업 수익성이 개선돼야 의미가 있다”며 “금리를 무조건 낮게 유지하는 것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원재·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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