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안팎 시련]성장률-물가-환율 '트리플 악재'

  • 입력 2001년 4월 4일 18시 49분


최근 한국경제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은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심상치 않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 등 강도 높은 ‘실탄 투입’으로 안정세를 찾아가던 금융시장도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일부 소비자심리지수 호전 등 최근의 일부 ‘호재’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둔화와 엔화가치 약세 등 ‘해외발(發) 대형 악재’에 압도당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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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가들은 “해외변수 악화와 물가상승, 수출둔화 등 새 변수가 가세하면서 객관적인 경제여건이 ‘경제위기론’이 기승을 부리던 작년말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경제학박사)전무는 “내수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경제의 불투명성 확대와 엔화약세 등이 가세하면서 금융시장의 선(善)순환구조가 다시 무너지고 있다”며 “경제의 ‘붕괴’ 정도는 덜하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98년과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저성장―고물가,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정부는 올해 경제정책 운용계획을 짜면서 5∼6%대의 경제성장을 하고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대에서 묶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경제흐름은 이보다 성장률은 더 떨어지고 물가는 더 오르는 방향으로 점차 굳어지고 있다.

최근 각 민간 경제연구소는 물론 대표적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대로 낮춰 잡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특히 1·4분기(1∼3월) 성장률이 2∼3%대에 그친 것으로 추정하면서 2·4분기(4∼6월)에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면서 상반기 성장률은 3% 정도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물가는 예상외의 큰 폭으로 뜀박질해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의 살림살이에 더 주름살이 가고 있다.

3월말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말보다 벌써 1.9%나 올랐다. 특히 최근 원화환율이 크게 뛰었고(원화가치는 하락) 하반기로 미루어놓았던 공공요금 인상까지 가세하면 연간 물가상승률은 5%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및 한국은행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올해 물가를 4%보다 낮은 선에서 잡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제수지쪽은 ‘겉모습’만 보면 올해 흑자기조에 변화가 없겠지만 ‘속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수출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경기침체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자본재와 원자재를 중심으로 수입이 줄어서 흑자가 생기는 ‘교역축소’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쨌든 국제수지가 흑자이고 외환보유액에 여유가 있어 ‘환란’과 같은 외환부족 상황이 올 가능성은 낮다.

▽불안 커지는 해외경제〓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경제는 연간 성장률 2% 이하의 ‘경착륙’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주가도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일본경제 역시 일본정부의 잇따른 경기부양 대책에도 불구하고 산업활동 둔화와 주가 및 엔화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경제 적신호’의 1차적 요인인 해외변수가 쉽게 호전될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엔화약세가 어디까지 가느냐는 것. 만약 엔화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인 달러당 130엔을 넘어선다면 아시아 각국의 경쟁적 평가절하로 이어지면서 아시아경제 전체에 ‘파국’에 가까운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올해 부분변동환율제로 환율정책을 바꾼 중국정부도 달러당 130엔이 넘어갈 경우 자국의 수출감소를 막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설 수도 있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정부 경제정책 딜레마▼

경제의 각 부분이 어려워지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나 해법은 간단하지 않다. 한 경제정책수단이 다른 경제 목표에 의해 제약을 받으면서 이른바 ‘폴리시 믹스(policy mix)’가 쉽지 않다.

재정정책은 이미 2차 공적자금 50조원 투입과 예산 조기집행 등으로 추가지출 여유가 별로 없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정자금이 더 필요해지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등은 전체 재정상황을 더 나쁘게 하고 물가불안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통화신용정책과 환율정책도 한계가 있다. 이미 금리가 매우 낮은 현실에서 더 내릴 경우 금융기관의 재무구조를 나쁘게 할 수 있으며 물가에도 짐이 된다. 물가관리를 위해서는 환율안정이 필요하지만 엔화약세라는 현실에서 수출을 생각한다면 무작정 환율을 묶는 것이 반드시 전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도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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