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2000 새희망2001]대졸 미취업자의 한숨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8시 45분


내년 대학 졸업 앨범은 차라리 실업자 명부에 가깝다. 명문대 졸업생이나 전자공학도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취업률이 30%에 불과하다. ‘대학은 실업자 양성소’라는 말이 나올 정도.

K대 기계공학전공 강영식(康永湜·26)씨. 그는 16년간의 교육과 군복무를 마치고도 ‘실업자’라는 신분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저희들끼리는 94학번을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말합니다.” 98년에 졸업한 94학번 여학생들은 IMF관리체제로 취업을 못했고 군대에 갔다와 2001년에 졸업하는 남학생들 역시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10여개 회사에 원서를 냈다가 아무런 연락이 없자 초조해지기 시작하더군요. 20개사를 넘어가니까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40여 곳에 원서를 냈는데도 면접 한번 못해본 친구도 있습니다.”

강씨는 20일 처음으로 면접을 했다. 사무용 가구 제조업체. 자신의 전공과는 관계가 없는 회사였지만 앞뒤를 잴 때가 아니었다. 면접을 마치고 사흘을 보낸 뒤 심호흡을 하면서 연락했다. “죄송합니다. 명단에 없습니다.”

며칠 전 사은회 행사가 있었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몇 명 없다 보니 분위기는 극도로 가라앉았다. 모두들 애써 취업이야기는 피했다. 교수님들도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한숨만 지을 뿐이었다.

12월초 종강직전 교수님이 “취업한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했을 때120명중 불과 5명만이 손을 들었다. 현재 25명 정도가 취업했다. 나머지 95명은 실업자로 졸업식에 참석해야 하는 상황. 공대는 조금 낫다. 인문대와 사회대는 전멸에 가깝다. 은행에 취직한 사회학과 친구는 과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취업사실을 알리지 못할 정도.

요즘은 형, 형수, 여동생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가 모두 출근한 뒤인 오전 10시쯤 일어난다. 요즘은 대인기피증까지 느껴진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놀 때가 가장 편안하다. 책을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TV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면 ‘과연 정치인들이 우리 사정을 알기나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도 안합니다.”

마지막 기대가 무너진 뒤 강씨의 마음은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절망의 바닥에 가면 남는 건 희망밖에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IMF관리체제에서 취업을 못했던 선배들이 98년 말부터 경기가 급격히 좋아지면서 거짓말처럼 모두 취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큰 힘이 됐다. 강씨는 내년 3월까지 공부를 더 해서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대학 4년을 안일하게 보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런 시련의 순간이 나중에 큰 보탬이 되겠지요.” 강씨는 인터뷰를 마친 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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