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先계열분리안 제출 의미]경영권다툼 일단락 신호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27분


실타래처럼 얽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현대사태가 조금씩 수습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분위기다.

현대가 9일 “채권은행측이 동의만 해준다면 계열분리 방안을 먼저 발표한 뒤 현대건설 자구대책 등을 추후 내놓겠다”며 ‘2단계 수습대책’을 들고 나왔고 채권은행이나 정부측에서도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습이다. 현대가 시장에서 신뢰를 잃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경영권 다툼과 계열분리 약속불이행이 일단락된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현대측이 ‘선(先)계열분리안’을 들고 나온 것은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있는 수로 보인다.

우선 현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현대사태 금주내 매듭지시에 대해 ‘성의있게 화답’할 필요가 있다.

또 이번 경제팀은 ‘대화를 할 만’하다는 게 현대측의 입장이다. 결국 현대문제에 대해 전임팀보다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현 경제팀과 맞서서 좋을 것이 없고 대통령까지 직접 언급하는데 계속 버티다가는 정부가 현대를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 것. “일괄타결로 안풀릴 때는 우선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해나가야 결국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현대관계자의 말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극심한 자금난에 부닥친 현대건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리적인 계산도 엿보인다.

현대측은 이미 여신한도를 초과해 자동차가 계열에서 분리되더라도 신규여신을 얻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자동차 계열분리 실천 및 중공업 조기계열분리를 선언, 시장에서 현대 각 계열사가 신뢰를 회복하면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돼 자금난을 덜 수 있다고 현대측은 분석한다.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상태에서 채권은행과 자구안을 협상하다보면 현대측이 일방적으로 채권은행의 요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현대건설이나 현대상선이 어느 정도 자금난을 덜면 협상과정에서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자동차 계열분리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더라도 ‘현대사태’가 조기에 마무리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측에 요구한 3가지 사항중 현대차 계열분리문제를 제외한 현대건설의 자구부분과 부실계열사 경영진 문책은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

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관계자조차 “주식시장이 워낙 바닥이라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주식을 다 팔아도 부채를 4조원으로 줄이기는 쉽지 않다”고 인정할 정도. 이 때문에 외환은행은 사재출연까지 요구하고 있다. 현대측은 “현 상태로서는 채권은행이 요구한 자구안 마련은 어렵고 가신퇴진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긍정적인 신호는 현대측의 문제해결 의지가 과거 어느때보다 강하다는 점. 신임 경제팀이 “현대관련 정책변화는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측은 “이번 경제팀은 대화의 대상이 된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병기·최영해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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