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34분 51초’ 견뎌볼까… 숏폼시대 거스른 ‘롱롱폼’의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7일 03시 00분


영화 ‘브루탈리스트’ 12일 국내 개봉
나치 피해서 美 간 헝가리 이민자… 섬세하게 ‘아메리칸 드림’ 명암 묘사
韓 이민자 삶 그린 ‘미나리’ 떠올라
美 골든글로브 작품상 등 3관왕… 내달 아카데미상 수상 여부 관심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전쟁의 상처와 흔적에서 영감을 받아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해 낸 천재 건축가 ‘라즐로’(에이드리언 브로디·가운데)의 삶을 그린다. 상영 시간이 약 3시간 34분에 이르는 이유에 대해 감독 브레이디 코베이는 “수십 년에 걸쳐 펼쳐지는 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나의 흐름을 유지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3시간 34분 51초.

1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총 상영 시간이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지난달 5일(현지 시간) 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드라마)·감독상·남우주연상 3관왕에 올랐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중간에 15분의 쉬는 시간(인터미션)까지 있는, 넉넉잡아 보통 영화 두 편에 해당되는 분량. 10초 안팎의 짧은 영상이 유행하는 ‘숏폼’ 시대에 이런 ‘롱롱폼’ 영화를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5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브루탈리스트’ 시사회는 영화관 맨 앞줄인 A열까지 다 찰 정도로 평단의 관심이 컸다. 영화 뼈대는 주인공 라즐로가 어느 날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에게 건축물 설계를 제안받으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그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화라 착각할 법하지만 실은 모두 가상의 인물들이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아메리칸 드림’의 명암을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다. 라즐로는 먼저 미국에 정착한 사촌의 가구점에서 일하지만, 이내 사촌 부인에게 추근댔다는 모함을 받고 쫓겨난다. 해리슨을 필두로 한 미 부유층은 외지인이란 이유로 그를 차별하고 모욕한다. 시대와 인종은 다르지만, 이민자의 삶을 묵묵히 견디는 서사란 대목에서 한국 이민자의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 영화 ‘미나리’(2021년)가 떠오른다.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레이디 코베이(위 사진), 에이드리언 브로디.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레이디 코베이(위 사진), 에이드리언 브로디.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믿고 보는’ 브로디의 탄탄한 연기도 영화를 든든히 받치는 축이다. 브로디는 2002년 ‘피아니스트’로 만 29세에 아카데미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공교롭게 두 작품 모두 홀로코스트의 상흔을 그렸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헝가리 출신이라고 한다. 브로디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직후 “라즐로의 여정은 제 어머니와 조상들이 전쟁을 피해 이 위대한 나라로 온 여정과 흡사하다”며 “저는 제 어머니와 조부모님의 희생에 많은 빚을 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미장센이 전하는 시각적 즐거움도 주목할 만하다. 제목 ‘브루탈리스트’는 노출 콘크리트로 차가운 아름다움을 만드는 건축 사조 ‘브루탈리즘’을 따르는 건축가를 일컫는다. 라즐로가 영화에서 선보이는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서재, 콘크리트 틈으로 비치는 빛으로 만든 십자가 등은 왜 좋은 작품은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게 좋은지 깨닫게 한다. 라즐로가 처음 뉴욕에 도착할 때 카메라가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비춰 혼란스럽고 뒤틀린 주인공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미국에선 ‘브루탈리스트’가 다음 달 2일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몇 관왕에 오를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된 멕시코 마약상을 그린 ‘에밀리아 페레즈’(13개), 오즈의 나라 마녀 글린다와 엘파바의 우정을 다룬 뮤지컬 영화 ‘위키드’(10개)와 경쟁이 치열하다. 다만 최근 배우들의 헝가리어 대사를 인공지능(AI) 기술로 보정한 사실이 드러나 수상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도 벌어졌다.

관건은 한국 관객의 반응이다. 최근 국내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2024년)가 관객 20만 명을 동원한 것처럼 홀로코스트 영화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미 유대인 사회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엉덩이가 아릴 정도로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큰 장벽이다. 좋은 좌석에서 보길 추천한다. 미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평가 신선도 지수는 93%, 관객 평가 팝콘지수는 80%로 다소 차이가 난다.

#롱롱폼#영화#브루탈리스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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