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진흙에…’展 개막
16세기 문정왕후가 나눠준 불화 등
불교미술 후원한 당대 여성 조명
11세에 왕이 된 아들 명종(1534∼1567) 대신 수렴청정했던 문정왕후(1501∼1565)는 1565년 아들의 건강과 후손 탄생을 기원하며 전국 사찰에 불화 400점을 나눠 준다. 조선 초기 문정왕후뿐 아니라 많은 왕실 여성이 불사에 나서자 사관과 유생들은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무너진다”고 비판했다. 왕실 여성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족의 건강과 평온을 바라며 불교를 후원했고, 이는 수준 높은 불교 미술품을 낳았다. 불교 미술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후원자이자 소비자였던 여성의 역할을 조명한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문정왕후가 1565년 나누어 준 불화 400점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총 6점이다. 이 중 ‘석가여래삼존도’(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와 ‘약사여래삼존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전시됐다. 특히 ‘약사여래삼존도’는 금빛 물감으로 그렸는데, 16세기 이러한 순금화를 민간에서 따라 해 노란 선으로 그린 불화가 유행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승혜 큐레이터는 “왕실 여성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였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고려시대 1345년 검은 감지에 금니(금 물감)로 쓴 법화경 7권인 ‘감지금니 묘법연화경’(리움미술관 소장)의 후원자도 여성이다. 7권이 모두 남아 있는 ‘감지금니…’는 막대한 재원과 뛰어난 장인이 투입돼 제작된 고려 사경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일반에는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시가 조명하는 것은 발원문이다. 여기에는 조성자인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워 은 글자로 쓴 화엄경 1부와 금 글자로 쓴 법화경 1부를 만드는 정성스러운 소원을 간절히 내어 일을 끝마치었다”고 적었다.
고위층이었던 김씨가 여성임을 한탄한 이유는 불교에서 남성만이 성불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고 경전을 만들거나 불상 조성에 참여하며 성불을 꿈꿨다. 전시에선 약사여래에게 “남성이 되게 해달라”고 한 고려 금산군부인 전씨 여동생의 발원문, 아미타여래와 극락으로 향하길 바란 마음을 담은 불화들, 또 자신과 가족의 극락왕생을 빌며 머리카락을 넣어 수놓은 불화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의 2부 ‘여성의 행원’에선 불교미술품의 후원자와 제작자로 활약하며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려 했던 여성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1부 전시 ‘다시 나타나는 여성’은 불화나 조각상에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관음보살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95년 만에 국내에 전시돼 화제가 된 7세기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젊은 청년으로 묘사된 관음보살이다. 이는 무릎에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송자관음보살도), 반투명한 베일로 머리를 가린 채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수월관음보살도) 등으로 변주된다. 6월 16일까지.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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