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에 좌절한 청년들, 홍범도 장군 보며 희망 얻기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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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범도’ 펴낸 방현석 작가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 면모 그려내
“홍 장군의 삶, 요즘 청년들과 비슷”

방현석 작가는 5일 서울 청계천을 걸으며 “홍범도 장군에게 승리란 전투에서 이긴 그날 단 하루뿐이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 그에겐 남은 모든 날이 패배였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방현석 작가는 5일 서울 청계천을 걸으며 “홍범도 장군에게 승리란 전투에서 이긴 그날 단 하루뿐이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 그에겐 남은 모든 날이 패배였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일격! 필살!”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선두 저격을 신호로 중국 만주 봉오동엔 독립군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매복 작전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일본군은 잠시 응사하며 반격했지만 곧 날아드는 탄환에 맞아 주저앉고 도망치다 넘어졌다.

일본군 157명이 사살돼 일제에 치욕을, 독립군에 희망을 선사한 봉오동전투는 이렇게 독립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기세등등할 만도 하지만 홍 장군은 오히려 슬퍼한다. 홍 장군은 죽은 동료들을 땅에 묻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공격할 때 가장 앞에 서고 퇴각할 때 맨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 야전 지휘관이다. 그들(죽은 동료)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고, 우리는 승리했다.”

7일 출간된 장편소설 ‘범도’(문학동네·전 2권)는 홍 장군을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그린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5일 만난 방현석 작가(62)는 ‘왜 홍 장군을 위대하게 그리지 않았냐’고 묻자 신간을 손으로 매만지며 “홍 장군은 영웅이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영웅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홍 장군은 전투 때마다 앞장서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어요. 혈육이나 재산도 남기지 않았죠. 권위를 버리면서 위대해진 영웅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방 작가는 20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독립군 유적지를 가는 단체여행을 한 후 지인들과 유적지 여행을 더 하며 홍 장군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방 작가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봉오동 전투지, 홍 장군이 야간 수위 생활을 하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을 방문했다. ‘언젠가 꼭 써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고,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집필을 시작했다.

“170여 권의 문헌을 읽고, 매주 50시간 이상 3년에 걸쳐 썼습니다. 밖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다가도 홍 장군과 ‘놀고 싶어’ 빨리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죠.”

2권을 합쳐 1304쪽에 이르는 신작엔 홍 장군의 일생이 담겼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홍 장군이 13세에 포수(砲手)가 돼 함경남도 개마고원을 누비고, 만주 벌판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이끄는 서사에 곁들여진 웅대한 자연 풍경 묘사가 압권이다. “포수는 짐승의 질서 속에서 사는 거야”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란 말은 실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지만 홍 장군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지금 이 시대 홍 장군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 방황하던 홍 장군과 산업 성장이 끝나고 저성장 시대에 좌절한 요즘 청년들이 뭐가 다른가요.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희망은 오지 않은 지금 청년들이 새 시대를 개척한 홍 장군을 보며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홍 장군이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 빗나가진 않았으니까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장편소설#범도#방현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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