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유년기, 재즈가 알코올과 마약 수렁에서 날 구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5일 12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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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현역’ 재즈보컬리스트 실라 조던

2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 실라 조던(왼쪽)과, 그의 듀오인 베이시스트 카메론 브라운. 플러스히치 제공
2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 실라 조던(왼쪽)과, 그의 듀오인 베이시스트 카메론 브라운. 플러스히치 제공
24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선 94세의 미국 재즈 보컬리스트 실라 조던(94)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알콜중독 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시절의 아픔,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워야 했던 싱글맘의 애환…. 150cm를 조금 넘는 아담한 체구에서 그를 거쳐 간 삶의 곡절들이 처연한 바이브레이션으로,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흘러나왔다.

‘더 크로싱’이란 자작곡에선 재즈의 힘으로 알코올과 약물 중독을 이겨낸 과정을 담담히 노래했다. 마지막 곡 ‘실라스 블루스’(Sheila's Blues)은 불행했던 어린시절부터 전설적인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만났던 찬란한 순간까지 그의 인생의 조각들이 담겼다. 삶 자체를 노래하는 거장에게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94세의 실라 조던이 35세의 실라 조던을 마주했다. 23일 서울 중구 호텔방에서 만난 조던은 1963년 데뷔앨범 'Portrait of Sheila'의 표지사진 포즈를 똑같이 취해보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94세의 실라 조던이 35세의 실라 조던을 마주했다. 23일 서울 중구 호텔방에서 만난 조던은 1963년 데뷔앨범 'Portrait of Sheila'의 표지사진 포즈를 똑같이 취해보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미국과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호주, 일본 등에서 세계 투어를 해온 ‘현역’ 조던에게 이번은 첫 내한공연이다. 재즈공연 기획사 플러스히치가 국내에서 공연을 가진 적이 없는 재즈 거장 무대를 여는 ‘더 늦기 전에’ 프로젝트의 첫 주인공으로 조던을 초청했다.

보컬리제(보컬을 이용한 즉흥연주)의 대가로 불리는 조던은 유명 연주자의 솔로를 보컬로 따거나, 공연 때마다 즉흥적으로 가사를 입혀 노래한다. 그는 2006년 맨해튼 카바레츠 클럽 협회(MAC) 평생 공로상, 2012년 미국 연방예술기금(NEA) 재즈 마스터 상을 받았다. 데뷔앨범 ‘Portrait of Sheila’(1963년)는 1939년 설립된 재즈 음반사의 명가 ‘블루노트’가 발매한 첫 재즈 보컬리스트 앨범이다.

23일 서울 중구의 호텔방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이 이렇게 화려한 도시인 줄 몰랐어요. 뉴욕과 정말 비슷해요. 물론 서울이 뉴욕보다 훨씬 안전할 테지만요.(웃음)”
●찰리 파커가 인정한 천재 재즈 뮤지션
무대에서 노래하는 실라 조던. 플러스히치 제공
무대에서 노래하는 실라 조던. 플러스히치 제공
음악은 불행했던 어린시절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17세에 조던을 임신한 엄마는 그를 낳자마자 펜실베니아에 살던 그의 부모님에게 조든을 보냈다. 14살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먹을 것은 늘 부족했고 집에 히터도 나오지 않았으며, 화장실은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야외에 있었다고 조던은 회상했다.

“동네에서 저희 집이 가장 가난했고, 사람들은 우릴 무시했죠.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나아졌어요. 제가 좋은 귀를 가졌거든요. 라디오에서 들은 멜로디를 그대로 기억해서 악보에 옮긴 뒤 노래로 불렀죠. 엄마는 제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으앙’하고 울지 않고 ‘워우’라며 노래를 불렀다고 했어요. 저는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어요.”

24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선 실라 조던. 플러스히치 제공
24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선 실라 조던. 플러스히치 제공
재즈가 삶의 전부였기에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의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에 향했다. 조던은 파커의 음악에 가사를 붙여 노래했고, 그의 공연을 따라다녔다. “18세에 파커의 음악에 가까이 있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를 갔을 정도"로 파커는 조던에게 재즈를 하는 이유이자 소명이었다. 이후 조던은 파커 밴드의 피아니스트 듀크 조던과 결혼했다.

“10대 후반 디트로이트의 한 클럽에서 파커의 공연을 처음 봤어요. 당시 제가 재즈 보컬 트리오로 활동한다는 걸 안 파커가 ‘여기 재즈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다면서요?'라며 공연 중간에 저흴 무대 위로 불렀어요. ‘누구지?’ 하며 두리번거리자 ‘그래, 거기 너네!’라며 저흴 지목했죠. 무대에 올라 파커의 노래 중 하나를 불렀고, 무대가 끝난 뒤 파커는 제게 와서 ‘꼬마야, 너는 백만 달러짜리 귀를 가졌구나’라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파커의 음악이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 됐습니다.”
●알콜중독, 마약중독의 수렁에서 그녀를 구한 재즈
서울 중구에 위치한 그녀의 호텔방에서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즐거워 하는 실라 조던.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중구에 위치한 그녀의 호텔방에서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즐거워 하는 실라 조던.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대에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페이지 쓰리’ 클럽 등 유명 클럽에서 공연을 했던 조던에게 술과 마약은 뿌리칠 수 없는 악마의 손길이었다. 무대가 끝난 뒤 손님이 건네는 술을 한두 잔씩 받아먹던 습관은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94세까지도 투명한 음색과 또렷한 발성을 유지하는 이유로 “금주와 금연”을 꼽았다.

“술을 못 마시냐구요? 저희 엄만 알코올중독으로 죽었어요. 이모 한 명을 빼고 저희 가족 전부 알코올중독이었어요. 저는 한 모금만 마셔도 술에 대한 갈망이 끓어요. 한동안 술과 마약에 빠져 살다가 노래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재활센터에 들어갔죠.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지 48년이 됐네요. 음악이 아니었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 거에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눈을 감은 실라 조던. 그는 인터뷰 내내 "재즈 음악, 찰리 파커의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이 삶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그는 한창 천재성을 분출할 시기인 30대부터 50대까지 사무직 타이피스트와 법률 비서로 일했다. 결혼 직후 남편이 그를 떠났기에 딸을 혼자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세 살 때부터 노래한 ‘본 투 비’ 보컬리스트, 파커가 인정한 천재 재즈 뮤지션인 그의 이름이 대중에겐 조금 낯선 이유다. 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난 성공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난 팝스타가 되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런 류의 성공을 얘기하는 거라면 난 성공하지 못한 게 맞아요. 하지만 내 음악은 재즈에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재즈 음악을 계속 살아 숨쉬게 하는 것, 그게 전부에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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