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랭보는 마지막 순간 절망의 편지를 썼다

정성택 기자 입력 2021-10-23 03:00수정 2021-10-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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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지음·황종민 옮김/224쪽·2만2000원·미술문화
“저는 폭음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들 말이 어쩌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걸작을 쓰려면 누구라도 정신적 균형을 잃을 것입니다.”

술을 진탕 마시고 하는 사과가 상대방을 들었다 놨다 한다. 폭음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그런 것 같다고 하고, 잘난 체를 싫어한다면서도 자신의 ‘걸작’ 때문에 절제를 잃었다고 변명한다. 소설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1882∼1941)가 자신의 후원자 해리엇 쇼 위버에게 1921년 6월 24일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자신의 돈으로 폭음하는 작가를 질책하는 후원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를 잘 쓰려고 위대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는 편지도 잘 쓴다”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의 편지는 하나의 문학이다. 작가 94명이 각각 쓴 편지들에는 개성 있는 표현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작가의 개인적 감정까지 녹아 있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가 죽기 4개월 전 누이 이자벨 랭보에게 보낸 편지에는 슬픔과 절망이 묻어난다. 오른쪽 무릎에 생긴 윤활막염으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그는 주문 제작한 의족도 염증이 생겨 쓰지 못했다며 “내 인생은 끝났어.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않아”라고 적는다. 랭보는 이후 전신에 퍼진 종양을 이기지 못하고 37세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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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당시 시대상도 담겨 있다. 독일계 유대인 평론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 1933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질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필을 마쳤다며 “내게 경의를 표하는 걸 잊지 말라”는 유머도 잊지 않는다.

책은 편지들을 무명시절, 사랑, 작별 등 8개의 주제로 나눠 정리했다. 각 편지의 원본사진과 함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설명도 자세히 담았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랭보#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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