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향기]어느날 아이가 철학적 질문을 한다면“내가 평생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만 5세 아이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언뜻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리지만 아이는 진지하다. 내가 보고 듣는 게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첫째 아이의 마음을 읽어 아버지는 철학 대화로 이어간다. “뭔가를 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렉스?” 부자는 그렇게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에 대해 얘기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도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고, 이 같은 생각을 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방법적 회의의 출발점인 기본 명제, 라틴어로 ‘코키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저자는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의 법률서기로 일했고, 지금은 미시간대 법학 및 철학과 교수다. 렉스(지금은 다섯 살보다 나이가 많다)와 행크 두 아이의 아버지인 저자는 딱딱할 수 있는 철학의 주제를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 간다. 저자 자신도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엄마가 보는 빨간색과 내가 보는 빨간색이 어떻게 같은지 알아?’라고 질문을 던졌던 터라 아이들이 무심코 건네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책은 인식론 등 기존의 철학적 담론의 주제보다 권리, 복수, 처벌, 권위, 젠더, 인종 등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떠올릴 수 있는 주제로 구성됐다. 이를테면 ‘신발을 신기 싫은데 아빠가 신으라고 하면 신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통해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지 다룬다. 남자가 여자보다 느리게 뛰면 창피한 건지, 자신의 세대에서 저지르지 않은 흑인 차별의 책임을 똑같이 져야 하는지 등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좋은 육아 지침서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철학은 생각하는 기술이다. 철학의 목표는 전문 철학자를 키우는 게 아니라 명료하고 신중하게 사색하는 인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키워 내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대화를 하며 질문을 하는 것. 저자와 아이들의 대화 대부분이 그대로 옮겨진 덕에 책장을 넘겨 가며 대화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2023-06-10 03:00 
[책의 향기]아우슈비츠에서 마주한 타인의 고통‘죽음공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일컫는 표현으로, 시체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출판사 편집자인 저자는 200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박물관을 여행차 찾았다. 그곳엔 나치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디오라마(모형)도,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극적인 영상도 없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전시실엔 대신 가스실에서 학살용으로 쓰였던 독가스 치클론B의 빈 깡통, 수용자들의 실제 머리카락, 여행가방, 옷가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1945년 1월 러시아군이 수용소를 해방할 당시 발견된 머리카락 2만 t, 여행가방 3800개, 신발 11만 짝 중 일부다. 당시 여성의 시체에서 잘라 낸 머리카락은 독일 직물회사에 팔린 뒤 침대 매트리스나 천 등을 짜는 데 쓰였다. 화장터에서 나온 재는 습지대를 메우는 시멘트 대신으로 쓰였다. 나치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충격을 받은 저자는 이 여행 뒤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후 12년 동안 세계의 제노사이드(대량 학살) 현장을 찾는 ‘다크투어’를 다녔고, 관련 자료를 공부하며 6년간 집필에 매달렸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 내전), 캄보디아(킬링필드), 칠레(피노체트의 학살), 아르메니아(아르메니안 대학살), 제주(4·3사건)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담담히 담았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 등으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저자는 아픈 기억이 담긴 곳을 찾는 것은 이 같은 불행이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제노사이드 현장을 둘러보는 체험은 우리에게 타인의 불행과 재앙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은 우연과 운뿐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일깨운다. 나는 다크투어가 우리 사회에 부족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2023-05-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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