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조선민중 승리” 시위 옹호한 일본의 양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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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공동연구에서 조명한 ‘3·1운동과 日 지식인-문인들’

22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한일 공동 연구 논문집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출간 간담회에 참석한 세리카와 데쓰요 교수, 사사가와 노리카쓰 교수, 이태진 교수(왼쪽부터). 공동 편집자인 사사가와 교수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지지 세력들이 반성 없이 옛 제국주의적 사고에 머무르고 있다”며 “3·1운동의 정신과 배경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일본이 지난날의 잘못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2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한일 공동 연구 논문집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출간 간담회에 참석한 세리카와 데쓰요 교수, 사사가와 노리카쓰 교수, 이태진 교수(왼쪽부터). 공동 편집자인 사사가와 교수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지지 세력들이 반성 없이 옛 제국주의적 사고에 머무르고 있다”며 “3·1운동의 정신과 배경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일본이 지난날의 잘못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간난이는 조선말로 ‘만세!’하고, 류지는 일본말로 ‘반자이!’해, 좋아, 함께 부르자!” 일본 작가 유아사 가쓰에(1910∼1982)가 1935년 발표한 소설 ‘간난이’에 나오는 구절이다. 3·1운동 당시 조선인 소녀와 일본인 소년이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며 나눈 대화다. 작가는 아버지를 따라 1916년 이주한 경기 수원에서 3·1운동을 경험했고, 1927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조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원을 고향으로 생각했다는 작가는 “독립을 바라는 조선인들의 마음에 감동해 울면서 썼다”고 했다.》
 

3·1운동은 당대 양심적인 일본 지성인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한일 근대문학 연구자인 세리카와 데쓰요 일본 니쇼가쿠샤대 명예교수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논문 ‘3·1독립운동과 일본 문학의 관련 양상’을 냈다. 당시 언론 통제로 대다수 일본인은 3·1운동을 ‘소요 사건’ 정도로만 인식했고 민본주의 논객과 사회주의자들도 조선 문제에는 침묵했다. 그러나 논문에 따르면 3·1운동을 옹호한 일본 지식인과 문인도 적지 않았다.

도쿄대 법학부 학생들로 구성된 ‘신진카이(新人會)’의 기관지 ‘데모크라시’는 1919년 “(조선 병합은) 단연코 불가” “(3·1운동 탄압은) 변호의 여지가 없는 비인도적인 행위의 극치”라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조선인이) 자유 천지에서 진실로 인류의 바른 생활을 획득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며 조선 독립을 지지했다. ‘신진카이’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비판한 민주주의 단체 ‘레이메이카이(黎明會)’의 중심 요시노 사쿠조(1878∼1933)의 영향 아래 있던 그룹이다.

중국의 혁명을 지원한 미야자키 도텐도 상하이일일신문에 3·1운동을 조명하며 “힘에 기대는 자는 힘에 쓰러지고, 칼에 기대는 자는 칼에 패한다”고 총독정치를 비판했다. 가시와기 기엔 목사는 일본 언론의 왜곡된 제암리 학살사건 보도를 바로잡고 학살의 진상을 소개했다. 당시 조선에 있던 스즈키 다카시 목사도 일제를 비판하며 반성을 촉구했다.

1923년 도쿄제국대 교수가 된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1924년 조선 출장에서 3·1운동을 알게 됐고 이후 산미증식계획과 동양척식회사 등을 비판한 논문을 냈다. 1926년 6·10만세운동을 접한 뒤에는 ‘조선 통치의 방침’을 통해 3·1운동을 “조선 민중의 승리”이자 “총독정치의 패배”로 규정했다.

3·1운동을 다룬 일본 문학 작품도 적지 않았다. 모리야마 게이의 소설 ‘불’(1928년), 마키무라 히로시의 서사시 ‘간도 빨치산의 노래’(1932년), 영문학자 사이토 다케시의 시 ‘어떤 살육사건’(1919년) 등이다.

세리카와 교수 등 일본 학자가 쓴 3·1운동 관련 논문 6편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사사가와 노리카쓰 국제기독교대 명예교수가 편집해 최근 발간한 한일 공동 연구 논문집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3만3000원)에 실렸다. 책에는 2014년부터 석오문화재단(이사장 윤동한)의 후원으로 이뤄진 관련 연구 논문 15편이 실렸다.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세리카와 교수는 “모두 조선의 완전 독립을 지지하는 데 이른 건 아니었지만 정의와 인권 실현 차원에서 3·1운동을 옹호한 일본 지식인들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태진 교수는 “동아일보가 논문 76편을 담아 1969년 발간한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 이후에는 눈에 띄는 3·1운동 기념논집이 별로 없었다”며 “이번 논집은 한일 공동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3·1운동#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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