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 “왜 여성 얘기만 쓰냐고요? 아직 할말이 너무 많은데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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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로 주목 받은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2년만에 출간

대학에서 여성주의 교지 활동을 했던 작가는 여성이 약자라는 사실과 글로 그것을 알릴 수 있는 게 특권임을 동시에 깨달았다. 그는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학에서 여성주의 교지 활동을 했던 작가는 여성이 약자라는 사실과 글로 그것을 알릴 수 있는 게 특권임을 동시에 깨달았다. 그는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그 시절의 기억과 아픔, 그리고 상처. 작가는 이야기를 주저 없이 흘려보내면서도, 어른대는 과거의 그림자를 담담히 환기시켜 보인다. 모두에게, 그런 시간들이 있었음을.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10만 부 넘게 팔리며 최근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최은영 작가(34)가 신작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으로 2년 만에 돌아왔다. 신인 작가가 첫 책, 특히 단편소설집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던 만큼 그의 신간에 대한 관심이 컸다.

전작 ‘쇼코의…’는 동시대 젊은 층의 고민을 반영한 섬세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작 역시 그런 측면에서 전작과 궤를 같이한다. 그가 겪었던 ‘시대 코드’가 뚜렷하다. 1980년대 유년을 보낸 뒤 90년대 10대를 보낸 이들이 이야기를 이끈다.

2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작가는 “당시엔 잘 몰랐지만 1980년대는 한국에서나 가능했던 이상하고 폭력적인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복고 열풍’이 불 땐 좋았던 시절로 추억되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부장제 문화는 뿌리 깊었고 인권 감수성도 낮았다.

학생과 여성들은 한없이 약자였던 시대. 최 작가의 소설은 남아 선호가 심했던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을 다룬 작품(‘601, 602’)이나 이들이 겪었던 기억에 기반을 둔 작품(‘모래로 지은 집’)이 여럿이다. 그는 이런 꿈과 좌절, 소통의 갈망 등 동시대 청춘의 경험을 반영한 주제에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성을 한껏 더해냈다.

“학교 선생님께 맞았다고 하면 외국인 친구들은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며 깜짝 놀라요. 하지만 우린 다 알잖아요. 그땐 그랬다는 걸.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직접 경험하고 정체성을 통과해 나온 것을 다루는 게 문학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특수하지만 보편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상대적으로 주류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두드러진다. 최 작가 작품의 중심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그 여름’ 등에선 국내 소설에서 보기 드문 여성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작가는 “남성이 주인공일 땐 그렇지 않으면서, 여성이 주인공이면 왜 여성 얘기만 쓰냐는 말이 나온다. 아직도 남성을 보편적 인간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성애 역시 “세상에는 이성애자가 존재하듯 동성애자도 실제로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다뤘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특히 한국에 사는 여성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진 건 남성들이잖아요. 신문이나 TV, 영화를 채우는 중심도 모두 남성이고 온통 그들의 서사뿐이에요. 저는 여기 함께 사는 여성에게 관심이 많고 그게 훨씬 재밌어요.”

그는 부지런한 작가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자’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등단 5년 만에 책 두 권을 냈고 내년부터 장편 연재도 시작할 예정이다. 최 작가는 “책을 너무 막 내는 것 아닌가 싶어 겁이 나기도 했지만 소설 쓰는 일이 천직이구나 싶을 만큼 무척 행복하다”며 “언젠가 한국 여성의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다룬 장편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최은영#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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