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큰 깨달음… 고승의 일화 103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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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시인 ‘스님의 생각’

만공 스님이 어느 날 국 참봉이라는 부잣 집에 묵게 됐다. 법문을 기대하는 그에게 만공 스님은 장터에선 본 고무줄 얘기를 꺼냈다.

“고무줄은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줄어드는 데도 묘미가 있더군요.”(만공 스님)

“늘어나기만 하는 고무줄은 아무 쓸모가 없지요.”(국 참봉)

“세상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재물도 모으기만 하면 늘어나기만 하는 고무줄 같고, 아끼기만 하면 줄어들기만 하는 고무줄 같습니다.”(만공 스님)

국 참봉은 무릎을 탁 치며 한없이 편안한 얼굴을 지었다. 만공 스님이 고무줄 하나로 재물에 대해 국 참봉을 깨우친 것.

최근 발간된 ‘스님의 생각’(쌤앤파커스·사진)은 근현대 활동했던 고승들의 일화와 법문을 통해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동아일보와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으로 불교계 작가로 활동한 정성욱 시인(53)이다. 그는 30여 년간 전국의 산사를 돌아다니며 스님들과 나눈 대화나 그들에게 전해 들은 얘기를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책에는 경허 스님을 비롯해 경봉 만공 효봉 금오 춘성 성철 법정 스님 등 쟁쟁한 고승들이 등장한다. 103편의 짧은 일화지만 스님들이 각각 터득한 수행과 깨달음의 지혜가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들어 있다. 여기에 일화마다 저자의 간결한 주석이 붙어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신도가 선물한 롤렉스 시계를 “수행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야 하는데 시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도끼로 내리쳐 산산조각 낸 성철 스님의 일화에선 수행자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경봉 스님의 제자인 혜월 스님은 신도가 49재를 지내 달라고 한 돈을 몽땅 양다리가 없는 걸인에게 줘버렸다. 재를 올리지 못할까 걱정한 원주 스님(절 살림을 맡은 스님)이 신도에게 알리자 신도가 “큰스님답다”며 더 많은 돈을 주고 재를 치렀다는 얘기에선 큰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다.

환속해 수배자가 된 제자를 숨겨주고 생일까지 챙겨준 효봉 스님, 수행 중 잠을 이기기 위해 한겨울에 찬물 담긴 항아리에 몸을 담근 춘성 스님, 하심(下心)을 체득하기 위해 스스로 거지가 된 금오 스님 등 여러 스님의 가르침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정성욱 시인#스님의 생각#고승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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