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성과주의’와 우울한 현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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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피로사회/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128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지난 일주일 동안 546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고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감시의 연속이었다. 감독관과 학생들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완벽한 위계질서의 구조를 이루었다. 그러다 대학에 와선 감시와 처벌, 규율시대의 종언을 알리고 자유로움을 누린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치밀하게 짜였던 하루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해진다. 공부 열심히 하라며 다그치는 선생님도, 지각하면 받는 처벌도 옛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보다 나아진 삶을 살고 있을까.

고용 동향에 따르면 올 2월을 기준으로 청년실업률은 1999년 이후 역대 최대치인 12.5%를 기록했다 10명 중 1명꼴로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2030세대의 소득이 추락하면서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 첫 출현’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청년들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암울한 표현은 자연스러운 수식어가 되었다. 대학생이 자유의 표상인 시절도 끝났다.

‘피로사회’에서 저자는 말한다. 규율사회는 끝났고 성과사회로의 이행이 이뤄졌다고.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부정성과 긍정성이다. 규율사회가 ‘…하지 마’가 지배적인 사회라면 성과사회는 무한한 ‘할 수 있어’가 자리 잡는다. 그럼에도 성과에 목을 매는 사회적 분위기는 각박하다. 이는 ‘규율시대는 광인과 범죄자를 낳지만 성과시대는 우울병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한다’는 말에 잘 나타난다. 대학생활도 성과사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반듯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스펙 쌓기를 갈구한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며 공모전에 참여한다. 그렇게 성과를 올려서 최고가 되는 길을 꿈꾸고 있을까. 굳이 따져 보면 생존하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청년 취업난이 고조될수록 사회로 나아가기 전인 대학시절의 삶은 ‘성과 올리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고교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는 생활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화하는 현대사회 모습의 축소판에 가까워진다. 규율을 졸업하고 성과를 향해 발버둥치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상연 인천 연수구
#피로사회#한병철#2030세대#n포세대#수저계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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