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128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고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감시의 연속이었다. 감독관과 학생들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완벽한 위계질서의 구조를 이루었다. 그러다 대학에 와선 감시와 처벌, 규율시대의 종언을 알리고 자유로움을 누린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치밀하게 짜였던 하루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해진다. 공부 열심히 하라며 다그치는 선생님도, 지각하면 받는 처벌도 옛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보다 나아진 삶을 살고 있을까.
고용 동향에 따르면 올 2월을 기준으로 청년실업률은 1999년 이후 역대 최대치인 12.5%를 기록했다 10명 중 1명꼴로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2030세대의 소득이 추락하면서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 첫 출현’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청년들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암울한 표현은 자연스러운 수식어가 되었다. 대학생이 자유의 표상인 시절도 끝났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청년 취업난이 고조될수록 사회로 나아가기 전인 대학시절의 삶은 ‘성과 올리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고교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는 생활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화하는 현대사회 모습의 축소판에 가까워진다. 규율을 졸업하고 성과를 향해 발버둥치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상연 인천 연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