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의 한국 블로그]미역국과 양고깃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라 씨
한국에서 도시계획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남동생이 재작년에 결혼했다. 그 올케가 한국 병원에서 출산을 하겠다고 한국에 왔다.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같이 오신 게 아니라서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 했다. 그런데 나도 아이를 낳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데다가 한국에서 생활한 지 만 11년이 되다 보니 몽골식, 한국식이 혼동되기도 해서 잘 할 수 있을지 제법 걱정이 되었다.

올케가 산통을 시작하자 병원에 입원하면서 친정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양가 가족 및 친척들의 전화, 문자 수십 통이 왔다. 그러고 보니 몽골 사람들의 친척들 간 교류가 아직 한국보다 긴밀하다는 점을 잠깐 잊고 있었다. 멀리서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일일이 답을 보낼 틈이 없다 보니 그분들은 더욱 답답했나 보다. 산통 시작 후 아홉 시간이 넘어가자 올케의 친정어머니가 급하게 연락해 왔다. 라마교 스님한테 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점을 봤더니 아이를 빨리 낳으려면 산모를 동쪽을 보고 누워 있게 하란다. 처음 들었을 때는 동쪽이 어느 쪽인지 찾아서 침대를 돌려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산통을 겪는 올케도 그 얘기를 듣더니 힘든 상황에도 하하 웃었다. 그래도 당황한 나머지 스님께 점을 보러 가신 그분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내 마음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라마교는 원 제국 때 티베트로부터 받아들인 불교가 몽골에 정착한 형태이며 수백 년 동안 몽골의 국교였던 관계로 아직도 제법 많은 몽골 사람들이 라마교를 믿고 있고 문화와 일상생활에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1937년 기준 몽골 성인 남자인구의 30%가 라마 승려였다고 한다. 당시 소련 군대가 주둔하면서 이들 모두가 해산 유배 또는 처형되어 이후 50여 년 동안 몽골에 사원과 승려가 존재하지 않았다.

출산을 마치고 신생아 사진을 찍어서 몽골에 보내주고 집에 잠깐 왔더니 몇 시간도 안 되어 올케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미역국을 계속 주는데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단다. ‘아 그렇지’ 하고 몽골식 고깃국을 준비했다. 출산 후 산모가 먹는 음식이 다른 것이다.

몽골에서는 출산한 산모에게 양을 한 마리 잡아서 신신한 양고기로 국을 끓여 준다. 힘들게 아이를 낳았으니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고깃국에 송이버섯을 넣어서 먹기도 한다. 물론 양송이가 아니고 자연 송이버섯이다. 여기에 우유차를 곁들여 출산 후 첫 식사를 하게 된다. 버섯 양고깃국과 우유차가 영양이 풍부하고 모유가 잘 나오게 하고 아이를 낳느라 늘어난 배를 수축시켜 주는 등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번에는 나의 한국 시어머님이 병원에 오셔서 양고깃국을 보시더니 옛날에 어머님이 출산하셨을 때는 한 달 정도 고기를 못 먹게 했는데 몽골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바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참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신다. 두 나라에서 다 살아본 나로서는 어느 쪽이 옳다고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그래도 유목문화가 바탕에 깔린 문화 속에서 더운 여름과 함께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을 나야 하는 몽골에서는 출산 후 고깃국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남편도 “아이가 퇴원해 집에 오면 ‘모빌’을 사다가 천장에 걸어줘야겠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몽골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가 두꺼운 종이를 여우 모양으로 잘라 애기 머리 가까운 곳에 걸어 놓는 관습이 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울려고 얼굴을 찡그리는 건 여우가 아이한테 와서 “엄마가 밖에 나갔다”라고 애기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우가 “아니야 거짓말이야”라고 하면 다시 웃는다고 생각한다. 몽골 사람들은 여우한테 아이를 놀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가짜 여우를 아기의 첫 장난감으로 만들어 달아 주는 것이다.

부모 고향은 몽골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조카에게는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된다. 어쨌든 바로 앞에서 배냇짓을 하며 잠을 자는 조카를 보면 저절로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된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마음 깊이 빌어 본다.
※이라 씨(38)는 몽골 출신으로 200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2010년부터 4년간 새누리당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다문화여성연합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