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국제아트페어 ‘컨템퍼러리 이스탄불’에 가보니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 ‘컨템퍼러리 이스탄불’은 서구권 아트페어와 달리 비잔틴, 이슬람의 전통과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를 접목한 참신한 작품을 대거 선보였다. 이 아트페어는 터키를 중심으로 중동, 발칸반도, 흑해, 남지중해 지역의 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이스탄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소파에 누운 여인의 몸 위로 꼬불꼬불한 아랍 문자를 문신처럼 덧입힌 사진, 테러에 희생된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리는 X자 형태의 조각, 부패하는 스테이크 덩어리를 꼼꼼히 표현한 실크 카펫 등. 이들은 올해로 6회를 맞은 터키 이스탄불의 국제아트페어 ‘2011 컨템퍼러리 이스탄불(Contemporary Istanbul)’에서 만난 작품들이다. 비잔틴과 이슬람의 전통이 현대와 만나고, 중동지역의 이슈를 주제로 삼은 다양한 작업들은 신선하고 역동적이었다.
24∼27일 이스탄불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는 20개국 90개 갤러리가 작가 526명의 작품 3000여 점을 선보였다. 밍크코트를 걸친 멋쟁이 할머니부터 어린 자녀와 함께 구경 온 부부, 젊은 연인들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전시장에서 터키인들의 미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에선 미술품을 사고파는 단순한 장터를 넘어선 점이 돋보였다. 큐레이터가 참여화랑의 작품들로 기획한 특별전, 터키 원로작가와 비영리전시공간을 조명한 코너,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 등 자국 미술을 알리고 세계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국제 이벤트로 손색이 없었다(www.contemporaryistanbul.com).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 터키의 이스탄불.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오래된 유적지로 알려진 이곳은 최근 세계 미술의 지형도에서 새로운 거점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급성장한 아트페어와 함께, 이스탄불 비엔날레의 성공적 운영 덕분이다. 비엔날레는 미술계의 담론을 생성하고,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을 탄탄하게 떠받쳐주면서 터키는 차근차근 세계 미술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서고 있다.
○ 미술시장의 세계화
‘컨템퍼러리 이스탄불’은 터키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 국가들의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만나는 기회다. 첫 회 관람객 2만5000여 명에서 올해 6만여 명으로, 해외 화랑 참여는 10여 개에서 40여 개로 늘었다. 아트페어를 주최한 IKON의 최고경영자 알리 귀렐리 씨는 “신생 아트페어가 다른 곳과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굳이 해외 컬렉터들이 오겠는가”라며 “서구를 모방하기보다 고유의 개성을 구축한 아트페어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아트페어는 터키의 지정학적 이점을 잘 살려 서구 미술뿐 아니라 발칸반도, 흑해, 중동, 남부 지중해 지역의 현대미술을 총괄하는 미술축제를 지향해 눈길을 끈다. 갤러리스트, 네브, 논, 람파 같은 터키 화랑과 그리스 포르투갈 이란 레바논 등 갤러리에서 선보인 작업이 참신하고 인상적이었다.
독일 바덴바덴의 프랑크 파게스 갤러리 대표 파게스 씨는 “다른 지역과 달리 터키 미술시장에는 활력이 넘치고 판매도 순조롭다”고 말했다. 한국 화랑으로 유일하게 참여한 A&B갤러리 전종훈 대표는 “기업인, TV앵커, 항공사 기장 등 컬렉터 층의 폭이 넓고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다”며 “한지를 소재로 추상을 표현한 서정민 씨와 동양적 깊이를 갖춘 강찬모 씨 등 동양과 서구의 조형을 결합한 작품이 인기”라고 밝혔다.
○ 미술의 세계화
테러에 희생된 무명인들을 기리는 조각작품.(왼쪽), 아랍 문자를 시각 언어로 변형한 평면과 오브제 작품.(오른쪽 위), 한국 화랑으로 유일하게 참가한 A&B갤러리.(오른쪽 가운데),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의 조각.(오른쪽 아래)
올해 12회를 맞은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터키 미술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미술축제다. 9월 17일∼11월 13일 열린 이번 비엔날레엔 11만여 명이 찾았고 뉴욕 타임스, 인디펜던트 등 해외 언론의 호평도 쏟아졌다. 일본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내부 설계를 맡은 전시공간, 중동과 남미지역의 큐레이터를 초청해 그룹전과 개인전 형식으로 5개 주제를조명한 전시 구성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 비엔날레는 한국과 달리 민간기관(이스탄불문화예술재단)에서 주최하는 것이 특징. 초창기엔 예산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금은 기업이 먼저 후원을 제안할 정도로 뿌리를 내렸다. 재단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데멧 이디즈 씨는 “우리는 관객 수보다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는가에 관심을 둔다”며 “터키 작가를 알리는 플랫폼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제 미술의 흐름을 터키에 소개하고 어린이와 젊은층을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터키 작가들이 세계무대와 만나고, 터키 관객과 컬렉터들이 세계 미술을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이스탄불 비엔날레와 컨템퍼러리 이스탄불. 그 성공의 밑바탕엔 서구 중심의 편향성을 벗어난 균형감각과 열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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