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파리지앵의 사랑 그리고 고독…‘프랑스적인 삶’

  • 입력 2005년 12월 1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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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삶/장폴 뒤부아 지음·함유선 옮김/400쪽·1만 원·밝은세상

지난해 100회째를 맞은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인 페미나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작은 유리병에 담긴 소금 인형이 하구에 던져진 뒤 겪는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거센 파도와 잠시 앞을 비춰 주던 등대, 난파 유조선과 대해를 지나 결국 인적 없는 작은 섬의 모래밭에 안식하는, 녹지 않고 어딘가에 다다른 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으로 여기는….

소설 속에서 내레이터로 나오는 프랑스 남자 폴 블릭은 1950년생인 데다가 기자로서 일했다는 점에서 작가와 닮았다. 여덟 살 적부터 쉰네 살까지 그의 삶이, 그간 지나간 프랑스의 각 정권과 엮이어 짜였다는 점에서 얼핏 미국 소설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프랑스적인 삶’은 각 장의 제목을 샤를 드골, 지스카르 데스탱 같은 프랑스 대통령들의 이름에서 따왔을 뿐, 커다란 세상사들은 멀리서 울리는 천둥처럼 블릭의 일상 저편을 지나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덟 살 적에 겪은 형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정신착란에 빠진 딸을 껴안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긴 소설에는 작가가 내면화한 인생론들이 감동적으로 지나간다. 마치 작가가 마신 녹차나 레몬주스처럼 몸속에 내면화한 깨달음들이. 쉰 나이에 할아버지가 된 블릭이 어릴 적 자신이 했던 것처럼 손자에게 장난감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어 보라고 권하면서 자기 소년 시절이 지나가는 환상을 보는 장면이 그렇다.

사주의 딸과 결혼한 스포츠지 기자, 나무의 사진을 찍어서 막대한 인세를 벌어들이는 사진작가가 되지만 바람피우는 아내를 어쩌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 결국 장인에게서 물려받은 회사가 파산에 이르자 정원사가 돼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 남자의 초상을 보면 결국 인생의 황혼에 다다르면 누구나 무언가를 깨닫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권기태 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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