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臨政’ 흔적이나마 살릴 길 없나

입력 2005-12-05 03:00수정 2009-09-3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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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대표부가 있던 건물. 파리 9구 오페라 근처에 있는 이 건물은 현재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일제강점기 유럽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대표부가 역사 속으로 묻힐 위기에 처했다.

파리대표부가 1919년에 입주한 건물이 파리 시내 중심가에 그대로 있지만 대표부가 활동했다는 흔적은 건물 안팎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주프랑스 대사관을 중심으로 파리 9구 오페라극장 근처에 위치한 이 건물에 대표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현판을 달기 위해 애써 왔다.

특히 내년은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인 해여서 한국 정부는 올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어 ‘현판 설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간단한 사안으로 보이는 현판 설치에 이처럼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이 건물이 현재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수십 가구가 살고 있어 현판을 달려면 수십 명에 이르는 집주인을 일일이 설득해야 한다.

프랑스 외무부와 파리 시청도 한국 측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집주인들은 전반적으로 현판 설치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대사관 관계자는 “자칫하다 문화재 건물로 지정될 경우 집값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규식(金奎植)을 대표로 한 파리 대표부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위해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는 것에 맞춰 1919년 3월 설치됐다. 한국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려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게 대표부의 주요 목적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표부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부는 임시정부 대표 명의로 된 탄원서를 강화회의에 제출했고, 세계적십자사에 로비를 벌여 일본의 지부였던 한국을 한때나마 독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계 공산당대회에 참석해 한국이 독립국가임을 인정받기도 했다.

대표부는 이와 더불어 대외 홍보 책자를 만들어 세계 주요 통신사들을 상대로 한 홍보 활동에 주력했다. 또한 프랑스의 지식인과 정치인 등을 끌어들여 ‘한국의 친구(Ami de Cor´ee)’라는 우호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대표부는 재정 문제로 1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한국 문제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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