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만화 거장 지바 데쓰야 訪韓 “한국만화는 순수함이 찰랑”

  • 입력 2005년 10월 3일 02시 59분


코멘트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들을 모은 그림 앞에서 웃고 있는 지바 데쓰야 씨. 사진 제공 부천국제만화축제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들을 모은 그림 앞에서 웃고 있는 지바 데쓰야 씨. 사진 제공 부천국제만화축제
일본 만화의 거장 치바 데쓰야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허리케인 조'란 말을 꺼내면 바로 '아~그 복싱만화'하며 감탄사를 터트린다. 삐죽 솟은 머리카락, 멋진 휘파람을 불며 피식 웃는 반항아, 파이팅 넘치는 권투 실력까지, '야부키 조'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봤을 캐릭터다.

이 만화는 애니매이션으로도 만들어져 1990년대 초 국내에서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방영됐다. 이 만화영화의 원제는 '내일의 조(あしたのジョ)'. 소년원 출신의 조가 사회의 냉대 속에서도 막강한 상대들과 맞서 복싱 챔피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일본 전공투(全共鬪) 세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만화로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변한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원작자 치바 데쓰야(千葉徹也· 66)를 1일 제 8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만났다.

"이번에 한국에 6번째 왔어요. 이현세 김동화 등 우수한 한국의 작가들이 생각납니다. 특히 최근 읽은 '순정이야기'(강풀의 순정만화의 일본판)가 인상적이었죠. 선이 없는 인터넷 만화라 그림책을 보는 듯 했습니다. 감성보다 감각이 앞서는 일본만화에서는 없는 찰랑찰랑한 순수함을 남아있다는 느낌도 받았구요."

'한류(韓流)'에 대해 묻자 그는 "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니 여자 친구들이 데려가 달라고 난리였다"며 웃었다. 반항아 조를 그린 작가치고는 너무 온순하게 생겼다. 어떻게 반항아 조를 만들었을까?

"처음에는 효자에 착하고 친구도 많은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죠. 반항하는 이미지의 조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없는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불량하게 보이고 강하게 보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무엇보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조의 모습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945 년 가족과 중국에 거주했던 그는 일본 패망 후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 중국에 잠시 숨어살았다. 아버지의 중국인 친구 도움으로 가족 6명이 다락에 잠시 숨어살았는데, 이를 지루해하는 동생들을 달래기 위해 이솝 우화, 안데르센 우화를 그려주었던 것이 만화가가 된 시발점. 1960~70년대 일본 젊은이들에게 '내일의 조'가 미친 영향을 묻자 그는 만화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지만 라디오나 TV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학생운동을 잠재의식 속에 서 응원한 것 같고 그런 부분이 작품 속에 녹아들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습니다. 만화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달은 계기가 됐죠."

한류를 비하하는 내용을 담아 문제가 된 일본만화 '혐한류(嫌韓流·7월발매)'에 대해 물었다.

"그 만화를 잘 모르지만 한국 문화를 나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일본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일본인의 피는 중국, 한반도, 아시아 국가가 각각 4분의 1이고 나머지 4분의 1만 일본 원주민이입니다.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해야 합니다. 그 책은 그런 걸 잘 모르는 사람이 쓴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링의 한구석에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최후를 맞는 조의 의미를 물었다.

"서서히 타기보다 빨갛게 태우고 하얀 모습을 남기는 나무에서 영감을 얻었죠. 꿈을 위해 모든 걸 다 걸자는 거죠. 조처럼 만화가로써의 제 인생도 새하얗게 불태웠다고 자부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