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오랑캐의 탄생…북방유목민 바로보기

  • 입력 2005년 7월 1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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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유목민은 단지 호전적이고 미개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찍이 앞선 기마술과 금속기 문화를 바탕으로 드넓은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해 온 아시아 역사의 한 축이었다. 사진 제공 황금가지
북방의 유목민은 단지 호전적이고 미개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찍이 앞선 기마술과 금속기 문화를 바탕으로 드넓은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해 온 아시아 역사의 한 축이었다. 사진 제공 황금가지
◇오랑캐의 탄생/니콜라 디코스모 지음·이재정 옮김/535쪽·2만 원·황금가지

“북방(北方)의 하늘은 닫혀 있다. 이곳엔 냉기와 얼음이 모이고 애벌레와 고치에 싸인 벌레들이 숨어든다. 사람들의 몸에 난 구멍들은 모두 생식기와 연결되어 있으니, 생김새는 금수와 같으며 장수한다….”(산해경)

고대 중국에서 중원(中原) ‘바깥’의 유목민들은 철저한 타자(他者)였다. 그들은 단지 호전적이고 미개한 야만인일 뿐이었다. 도덕적 규범과 문화적 성취가 결여된 세계에 속하였다. 문명의 빛은 주변으로 퍼져 나갈수록 점차 희미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은 엄연히 아시아 고대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북방 유목민들은 일찍이 앞선 기마술과 금속기 문화를 바탕으로 드넓은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하였다. 한(漢)나라 시대, 흉노 유목 공동체는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니 중국을 압박하는 세력으로 부상한다.

당시 북으로, 북으로 팽창해 가던 중국의 정치적 문화적 공간은 ‘마치 뚫을 수 없는 벽과도 같은’ 존재와 맞닥뜨려야 했다.

중국이 ‘중화(中華)’와 ‘오랑캐’의 개념을 지어낸 것은 이 같은 위협에 직면해서다. “천자(天子)는 천하의 머리요 오랑캐(만이·蠻夷)는 천하의 발이니, 지금 흉노가 거만하게 굴며 지극히 불경한 것은 발이 위에 있고 머리가 아래에 있어 거꾸로 뒤집힌 것과 같다!”(한서)

그 화이(華夷)사상의 토대가 된 것이 바로 중국 왕조사의 전범이자 동양 역사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사마천의 ‘사기’라고 저자는 지목한다. 중국이 이방(異邦)으로 진군해 들어가는 것을 ‘명백한 숙명’이라고 보았던 사마천. 그에 이르러 흉노는 무섭고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신화의 외피를 벗고 중국 역사의 종속변수로 포섭된다.

사마천은 과거 중국이 숱한 오랑캐들을 정복했듯이 흉노 역시 극복할 수 있는 존재, ‘이미 알고 있는 범주’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그것은 ‘북방 길들이기’였다.

이 책은 북방 유목민들의 진짜 역사를 찾으려는 시도다.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연구소 석좌교수인 저자는 고고학 분야의 최신 지식과 광범한 문헌 지식을 토대로 중화사관의 벽을 깨부수고자 한다. 유목민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고찰하며 전통적인 역사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 문명의 영원한 상징, 만리장성. 장성은 야만적인 북방 오랑캐로부터 농경민인 한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저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장성은 오히려 무력 침입의 도구였다. 북중국 국가들의 팽창주의 전략의 일부였다. 중국인들은 북방을 정복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장성을 쌓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과 북방의 관계는 사마천의 렌즈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마천의 ‘사기’로 인해 북방 유목민들은 문명화된 한족의 대척점에 있는 ‘오랑캐’라는 덫에 2000년 넘게 갇혀 있었다!”

우리 역시 중국의 역사 왜곡을 비난하고 중화주의의 대두를 경계하지만 유목민의 역사에 관한 한 중화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가. 중국의 입장에선 한(韓)민족 또한 변방의 ‘동이(東夷)’에 불과할 터인데!

원제 ‘Ancient China and Enemies’(2002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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