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순수 우리말 홀대하는 英韓辭典

  • 입력 2005년 1월 5일 18시 15분


성균관대 이재호 명예교수가 국내의 영한사전(英韓辭典)들이 순수한 우리말을 홀대하는 사례를 낱낱이 밝혀냈다. king을 찾으면 ‘왕’과 ‘군주’는 있어도 ‘임금’이 없고, temple은 ‘사원(寺院)’은 있어도 ‘절’이 없으며, mountain도 ‘산’만 있을 뿐 ‘뫼’ 나 ‘메’는 없다.

칠순의 노(老)교수가 34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이 같은 문제점을 밝혀낸 것에 경의(敬意)를 표한다. 1890년 H G 언더우드 박사가 영한사전을 발간한 이래 수많은 영한사전이 나왔으나 일본판(版) 영어사전을 베끼거나 앞서 발간된 사전을 적당히 참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전은 국력의 바탕이며 문화발전의 원동력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지식 강국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국어(自國語) 사전을 갖고 있으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사전을 통해 제 나라 문화를 전파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광복 이후 사전 편찬에 쓴 돈은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을 위해 7년 동안 112억원을 사용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이 안에서 3000여 개의 오류가 발견된 바 있다.

제대로 된 영한사전을 갖는 것은 우리말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국어사전은 어쩌다 한 번 들여다보지만 영어사전은 곁에 두다시피 해야 하는 것이 국제화시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한사전에 순우리말을 찾아 수록하는 일은 우리말을 지키고, 그 표현 능력과 영역을 확장하는 길이 된다.

정부는 사전이 곧 나라의 지적(知的) 얼굴이요,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제대로 된 영한사전 편찬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어는 전 세계 6000여개 언어 중 12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가. 이미 영한사전을 낸 출판사들도 서둘러 개정판을 내고 학계도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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