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3월 19일 18시 2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18년작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역사학자는 마치 화가가 먼 풍경을 스케치하듯 현재 남아 있는 '구조'를 통해 원거리에서 '과정'을 감지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에코리브르
검은 코트 차림의 한 젊은이가 높은 바위산 위에 올라 여러 곶들 사이로 자욱이 피어오르는 안개를 내려다보고 있다. 독일 출신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18년 작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이다. 미국 예일대 사학과의 석좌교수이자 냉전사(冷戰史) 전문가인 저자는 이 그림을 갖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난문을 풀어내려 한다.
이 책에서 과거는 프리드리히의 ‘방랑자’가 바라보는 대상처럼 손에 잡힐 듯하지만 결코 잡히지 않는 경이로운 풍경으로 그려진다. 역사가는 ‘백미러로 보이는 이미지’로서의 과거를 그저 ‘묘사’만 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묘사 행위는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대신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인식을 한 단계 격상시킨다. 바로 여기서 역사의식이 작용한다. 저자에게서 역사의식이란 ‘추상적 묘사’와 ‘사실적 묘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해주는 정신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가 이같이 추상과 사실 사이의 긴장 위에 있는 대상이라면, 그런 과거를 그려내는 역사학 또한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역사가 예술인가, 아니면 과학인가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이 책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이후의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된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역사가 과학’이라고 주장했을 때의 과학이란 그저 넓은 의미의 ‘학문’, 기껏해야 인문과학 또는 사회과학을 지칭했을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한 학자들은 아예 역사의 학문성에 회의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저자는 역사를 자연과학과 매우 유사한 학문으로 규정한다. 두 분야의 연구자들은 마치 화가가 먼 풍경을 스케치하듯 현재 남아 있는 ‘구조’를 통해 원거리에서 ‘과정’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특정 변수는 절대적 의미를 상실하고 여러 방법들은 혼용된다. 역사학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독립변수에 골몰하는 사회과학과 구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이런 친화성은 카오스와 복합성 등 과학 이론과 개념들을 통해 더욱 설득력 있게 설명된다. 자연에서처럼 역사에서도 전혀 무관해 보이거나 사소한 요인, 또는 원인(遠因)이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는, 이른바 ‘나비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껏 역사에서 폄훼되어온 ‘우연성’ 개념이 비로소 이론적으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더불어 ‘방법적 다원주의’도 한몫을 한다. 역사가는 묘사를 사실에 근접시키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역사 개념이, 마치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뿌연 안개 틈 사이로 멀리 바다가 보이듯, 이제까지의 드러난 요소들로부터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미지로만 가득 찬 풍경으로서의 과거(대상), 대상을 향한 다양한 자연과학적 접근(방법), 추상과 사실 사이를 오가는 정신의 활동(인식), 이 모든 것의 종합이 바로 저자가 말한 ‘역사’다. 이런 역사는 그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제약을 받으면서 또한 자유롭다는 점에서 ‘과거에 대한 억압’이자 동시에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최성철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 교수·서양사 historyscc@hanmail.net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