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죽어도 좋아'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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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친구와 영화 ‘죽어도 좋아’를 봤다고 자랑했다.

이럴 땐 소감을 물어봐야 한다.

“재미있었어?”

아내는 “자주 하대”라고 답했다. 움찔했다.

다음날 새벽 출근하기 전에 피로에 짓눌린 어깨를 풀려고 맨손체조를 하자 아내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영화에서 할아버지가 하는 체조와 똑같네.”

아내는 이번에 여러 아줌마들과 ‘죽어도 좋아’를 보려고 했지만, 대부분 “그런 추한 영화를 왜보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왜 많은 사람이 노인의 ‘성(性)’을 추하게 여길까? 인류가 진화하면서 종족 번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출산력이 가장 왕성한 나이의 성만을 아름답게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선사시대에는 노인의 성은 의미가 없었겠지만 성 자체가 ‘종족 보존’과 별개가 되면서 노인의 성도 젊은이의 성과 마찬가지로 중요해졌다. 그러나 아직 뿌리박힌 무의식적 관념은 바뀌지 않은 듯하다.

상당수 노인은 즐겁게 성생활을 한다. 성의학에서는 연령대와 발기부전 빈도가 비례한다고 본다. 30대의 30%, 40대의 40%가 발기부전이고 70대는 30%가 정상적으로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혼자 사는 80세 이상 할머니의 20%가 매주 한 번 이상 자위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성의학클리닉 원장은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노인에게 섹스 만한 즐거움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많은 사람이 늙으면 자연스럽게 성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갈고 닦으면’ 노년기에도 왕성히 성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중년 이후 이런 저런 이유로 성을 멀리 하면 성기관이 퇴화하며 전립샘에 문제가 생겨 성기능이 더욱 약화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일부 남성은 집에서 아내와의 관계를 피하기도 한다. 자녀가 중고교생이 되면서 아내를 멀리 하고 대신 외도(外道)로 근원적 욕구를 푸는 것이다.

50대 이상 남성 사이에서는 “아내도 가족인데 근친상간을 하란 말이냐” “아내와의 관계 때 음경이 낯을 가리지 않아 행위가 잘되면 치매의 첫 단계”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노인의 성이 추하지 않은 것은 노인의 사랑 역시 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의학자들은 부부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성만큼 강하고 지속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다.

성인 자녀가 배우자와 사별했을 때 그들의 재혼을 먼저 서두르는 사람은 노부모지만 부모가 혼자 됐을 때 재혼이나 이성교제를 권하는 자녀는 별로 없다.

필자가 아는 어느 공무원처럼 홀로 된 아버지에게 은근히 여성을 붙여주는 그런 효(孝)는 아닐지라도, 부모의 성을 존중하고 필요하다면 지켜줄 필요가 있다. 노인의 성이 추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늙으면 반드시 성을 갈구하게 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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