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첨단' 물결에 흔들리는 CD시장 미래는…

  • 입력 2002년 12월 4일 18시 18분


SP(유성기판)에서 LP로, CD로,DVD와 컴퓨터 음성파일로 음악 소프트웨어의 모습은 진화를 거듭했지만 오히려 음악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진지함을 잃어가고 있다.
SP(유성기판)에서 LP로, CD로,DVD와 컴퓨터 음성파일로 음악 소프트웨어의 모습은 진화를 거듭했지만 오히려 음악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진지함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너희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음악팬인 회사원 L씨(41).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퇴근길에 음반점에 들러 새로 나온 CD를 챙기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그런 그가 CD장에 대고 그렇게 뇌까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연주가 얼굴도 보고싶어….

집에 들어온 L씨는 먼저 DVD가 가득 꽂힌 벽장을 향한다. DVD플레이어의 트레이에 ‘영상음반’을 넣고 리모컨의 스위치를 누른다. 헨델 ‘메시아’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눈을 감자 사방팔방, 반사음으로 가득한 성당 공간이 주위를 에워싼다.

“예전에도 VHS테이프로 발매된 영상물을 구해 보았지만, DVD의 생생한 화질은 또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서라운드 음향’의 위력도 대단해요. 연주장에 갈 필요가 없죠.”

그가 즐겨 보는 DVD는 대략 세 종류. 가장 즐겨 집어드는 것은 아무래도 ‘화면’이 중요한 오페라다. 장 피에르 폰넬 등 명연출가의 솜씨로 빚은 로시니 ‘세빌랴의 이발사’ 등은 그가 친지들에게도 추천하는 ‘명반’.

“오페라는 DVD가 CD보다 더 쌀 수 있어요. 한 장으로 오페라 한 곡이 다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물론 ‘빈 신년음악회’ 등 연주회 실황녹화물도 L씨가 즐겨 감상하는 영상음반 목록에 든다. 고금의 명선율에 해외 관광명소의 절경을 덧입힌 ‘뮤지컬 저니’ 시리즈 등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 집어든다.

#컴퓨터가 음반 라이브러리다

L씨는 얼마전 인터넷 클래식 동호인 모임의 회원으로 등록했다. 웹사이트 초기화면에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앨범 표지사진을 누르면 선율이 흘러나온다. 새로 발매된 앨범도 금방 업데이트된다.

“동호인과 음악 뉴스를 공유하고, 손쉬운 조작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편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물론 음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L씨는 인터넷을 통해 콘서트 동영상까지 즐긴다. 해외 사이트인 ‘안단테 닷컴’을 통해 화제의 영상물을 여럿 접했다. “요즘 유료회원제로 전환돼 접속을 끊었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비슷한 무료 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겁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CD음질 라디오?

얼마전까지 L씨는 일어나자마자 CD플레이어의 전원을 켰다. 이제 그는 대신 위성방송 셋톱박스를 켠다. ‘스카이라이프’가 제공하는 60개의 오디오 전용채널 중 8개가 클래 식 채널이다. CD와 구분하기 힘든 디지털 고품질 음향이다.

“클래식 레퍼토리만 1만장에 가까운 라이브러리를 확보하고 자동 선곡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화면을 통해 연주곡 정보를 제공하면 고정팬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합니다.” 오디오채널 사업자인 ‘사티오’의 이시명 대표의 말.

#그러나…

“용돈을 아껴 한 장씩 검은 LP음반을 사던 학창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에 사는 셈이죠. 그런데 그때와 같은 음악사랑, 가슴 두근거림은 이제 없으니 왜 그럴까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이 작용한 탓일까.

L씨는 ‘미래에도 CD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컴퓨터 파일이나 디지털 방송도, 벽장에 모아두고 흐뭇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CD의 ‘수집하는 취미와 재미’를 대체하지는 못할 겁니다. DVD도 한계가 있습니다. 화면이 제공되면 상상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대여섯번만 보면 당분간 들여다보기 싫어져요. 결국 음반의 미래는, CD가 ‘사양’면에서 진보된 형태로 머무르지 않을까요?”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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